류권홍원광대 교수
   
 


전기 수급이 불안하다. 2011년 9월15일 발생했던 정전 사태가 다시 재현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일 오전 10~11시 평균 최대 전력수요는 7637만㎾, 예비 전력 446만㎾로 전력 수급 경보 '준비' 단계가 발령됐다. 10시22분에는 순간 최대 수요전력이 7688만㎾까지 급증했다.
올 1월 3~4주에는 최대 전력수요가 7,913만kW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영광원전 2기가 가동되더라도 예비 전력이 127만㎾선까지 하락할 수 있다. 만약 원전 2기에 이상에 생기면 200만㎾의 전력 공급이 감소한다. 블랙아웃이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전력 소비를 줄여달라는 홍보를 아무리 해도 영하 15도에 이르는 추운 날씨에 당장 전기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에너지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전기 가격이 오르더라도 소비를 감소하기 어려우며, 일단 설치한 전기 난방시설을 단기간에 가스 또는 석유를 쓰는 다른 난방시설로 교체할 수 없는 잠김효과(Lock-In Effect) 때문이다.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송도의 고층아파트 60층에 사는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가동 중단으로 걸어 다녀야 한다. 난방은 물론이고 화장실 물도 내려오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사용도 불가능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 조건이 의·식·주라고 배웠는데, 개인적으로는 틀렸다고 본다. 식량·물·에너지가 필수 조건이다. 옷이나 집은 당장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에너지나 물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특히 도시화가 집중된 우리나라에서는 재앙이 되고야 만다.
전기 공급 중단 후 2~3일 내에 폭동 등 사회 불안이 발생하게 되고, 전기 공급 중단이 1주일 정도 장기화되면 우리나라의 경제 시스템이 붕괴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장이 가동되지 못하고, 공항·항만 등 물류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전기로 움직이는 주유기도 가동 중단되어 자동차의 사용도 불가능하게 된다. 자가 발전기는 임시 방편적 수단이고 그 용량이 아주 적기 때문에 전국적인 블랙아웃의 해결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정전 위기가 발생했을까? 우리나라의 전기 가격이 낮아서 그렇다는 주장이 대세다. 과연 전기 가격이 낮은 것만이 원인일까? 에너지가 가격에 탄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단순히 가격을 통해 수요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긍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0년 주택용 전기 가격이 ㎾ 당 103.38원인데 반해 산업용은 76.63원, 농사용은 42.54원이다. 일반 주택용 전기의 가격과 소비의 효율은 이미 충분히 높은 데, 산업용이나 농사용 등에 사용되는 전기 요금이 낮아서 문제가 된다면 수긍할 수 있다. 용도별 구분 없이 낮은 가격과 국민의 과소비로 몰아가며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이다.
정전 위기의 근본 원인은 수급 예측의 잘못과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과도하게 추진하려는 과정에서 신규 발전소 건설을 제한한데 있다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당선인은 물론 정치권에게 에너지의 문제는 항상 후순위에 있다.
에너지 문제는 에너지 부국인 미국의 대선에서조차 1차 토론에서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심각하게 논의되는 데 반해,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3차 토론에서 언급만 되다 말았다. 올 겨울 부디 무사히 넘어가기를 하늘에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