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혁신기자의 책과 사람
- 박민규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 날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책 한권을 잡아들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 것은 세상을 잃은 것이다. 그 상실감이란 오징어 다리를 뜯어먹다가 앞니가 쏘옥 빠져버린 느낌이다. 아니, 우리에게 닥친 이 일이 겨우 앞니 하나 빠져버린, 하찮은 것에 비유할만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뭐 그건 내 맘이다. 내겐 앞니 하나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앞니가 금니라면!

박민규의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위즈덤하우스)를 집어 들었는데, 이 소설을 읽은 이유는 손이 거기에 뻗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어 들고 책장을 넘겼기 때문이지 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이런 걸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자.(이런 식 표현은 소설가 천명관이 장편소설 〈고래〉에서 빈번히 써먹는 수법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어쩌면 세상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빠진 젊은 세대들의 분노와 절망감을 이 소설은 가장 적절히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읽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기대감은 적중했다. 왜 우리 시대의 젊은 세대들은 정권교체를 바랬고 투표장으로 달려갔는지를.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바로 젊은이들의 상실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어찌 보면 젊은 세대가 이 소설을 읽기 보다는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향수를 품고 있는 '노땅'들께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뭐 이 노땅 세대가 책이라는 걸 읽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의 서울이다. 등장인물들은 백수, 왕따, 꼴찌 같은 한국산 남성 루저들과 여성으로서는 치명적인 원죄를 짊어진 못생긴 여자다. 주인공 '나'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청년이다. 그 주변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 역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는 청년, 그리고 못생긴 여자. 이들은 자본주의 소비주의의 총화인 백화점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만난다. 뭐 청춘 성장 소설이니만큼 이들 세 청춘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뿔싸, 루저 청년들과 못생긴 여자라니! 이 세상에 찌질이들이란 널리고 널려 있으니 그렇다 치고 못생긴 여자라? 못생긴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소설이 있던가? 영화는 더러 존재했다. 나중에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아 미녀로 재탄생하는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가 있었다. 부조리와 편견이 가득한 우리 사회에서 못생긴 여자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2009년 작품인 이 소설에서 못생긴 여자의 등장은 어찌 보면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아하, 조선시대 기담소설인 〈박씨 부인전〉이 있었네. 원조추녀 박씨 부인이라 …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소설이 아닌 현실 속의 루저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실 고전소설 속 박씨 부인은 소녀가장도 게다가 루저도 아니잖은가?

나는 이 시대의 '노땅'들, 이번 대선에서 '노땅'의 권위를 몸소 보여준 분들은 이제 젊은 세대의 삶과 아픔을 공감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을 보듬어주고 그들이 만들어나갈 세상을 지지하고 조력해야 한다고. 물론 앞으로 5년간은 기어이 가드 올린 젊은 세대의 손을 끌어내리고 고집불통의 펀치를 날려 젊은이들의 쌍코피를 터뜨릴 테지만. 그렇지만 코피 터뜨렸다고 해서 게임 끝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할 것이다. 젊은 세대의 좌절과 절망은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젊은 세대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입시전쟁, 등록금전쟁, 취업전쟁, 결혼전쟁 등등. 초등학생 때부터 휴일을 반납하고 밤늦도록 선행학습과 입시 준비에 매달려야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용을 써야한다. 이러다가 진짜 용 되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 중간에 수컷들은 군에 입대해 젊음을 볼모로 잡혀야하고 '노땅연합' 같은 곳에서 북한과 한판 붙자고 시위할 때마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좌불안석 노심초사해야 한다. 암컷들은 출산육아의 멍에를 짊어져야 한다. 학력도 변변치 않고 스펙도 없고 빽도 없는 루저들은 붕어빵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맛없는 붕어빵처럼 늘어날 것이다. 노땅세대들이여, 젊은 세대의 좌절과 분노가 무엇인지 소설이나마 읽으면서 이해해보시기를. 싫다고? 뭐, 그럼 5년 뒤에나 다시 보자.
 

   
 


/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