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룡 상좌는 사무치는 배신감과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해 혼자 끙끙거려대다 그만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긴긴 세월 희노애락을 같이 나누며 살아온 이웃과 이별하고, 산 설고 물 설은 신풍서군으로 떠나가야 할 몸이 제 분수를 잊고 남의 일까지 걱정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감정을 식히고 보니 그렇게 부질없을 수가 없었다. 그는 도 안전국에서 곧 강제이주명령서가 날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안해부터 진정시켰다.

 『림자답지 않게서리 그만 일에 흥분하고 눈물까지 뿌리면 앞으로는 어케 살아갈 기야? 오마니 걱정할까 싶어서리 내래 말은 않고 있었디만 앞으로 림자하고 나는 이보다 더 험한 꼴도 봐야 하고, 인구 그 놈이 저질러놓은 과오 때문에 우리 부부는 죽을 때까지 뉘우치면서 멍에 진 삶을 살 각오도 해야 돼. 부모니까. 기러니까니 앞으로는 밖에 나가 억울하고 험한 꼴을 당하더라도 아이들 보는 앞에서 불퉁거리며 눈물뿌리지 말고, 늘 자식들에게 삶의 바른 전형을 보여 주듯 림자한테서 잘못을 찾고 뉘우치는 자세로 남은 여생을 살아가라우.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시기하는 것처럼 우리 가족은 어쩌면 별로 해놓은 것도 없이 선친들이 닦아놓은 사상적 토대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당의 두리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권력을 누리면서 떵떵거리면서 잘살아왔는지도 몰라. 기러니까니 우리 주위에는 늘 기런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림자 혼자 있을 때도 우리가 자식들을 잘못 키우고, 사상교양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서 인구 그 놈이 그런 과오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며 몸을 낮추고 살라우. 기래야 다시 복권될 수 있는 기회도 오는 법이야. 내래 인구 그 놈이 저질러 놓은 과오 때문에 신풍서군으로 떠나가디만 기건 아비로서의 도덕적 책임을 져야 된다는 량심의 가책 때문에 자발로 중앙당을 찾아가 자청한 일이지, 당이 우리 가족을 그 곳으로 내쫓지 않았다는 것을 림자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돼. 기러므로 얼마간 세월이 흐르면 나는 분명히 복권 될 수 있고, 또 림자도 군 인민병원보다 더 큰 병원에서 당의 신임을 받으며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법이야. 희망을 가지라우.』

 정남숙은 자신도 모르게 귀가 번쩍 열리는 것 같아 세대주를 바라보며 다시 확인했다.

 『그 말, 정말 믿어도 되는 겁네까?』

 『기럼! 우리가 이번에 신풍서군으로 들어가는 것은 「혁명열사의 후손들은 조국을 버리고 남조선으로 달아나도 그 가족들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잘만 살더라」는 인민들의 반목과 중앙당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나 스스로가 이 길을 택했다는 것 뿐이야….』

 『그럼 왜 나한테는 그런 말 한 마디 해주지 않았습네까?』

 『사람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하늘의 명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과 주변도 좀 살피면서 살 줄도 알아야 돼.』

 정남숙은 세대주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는 싶어 다시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