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농성자·사설폭력 투입현장 생생하게 드러내

종합문예지 <황해문화> 겨울호(통권 77호)가 나왔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평균 2316시간으로 OECD 국가 중 1위이고, 청년들의 아르바이트 시간도 1주 평균 33시간이나 된다. 알바노동이라는 시급노동을 하는 40∼50대 아주머니들은 220만 명에 이른다.

노동인구의 3분의 1이 최저임금을 받거나 그마저도 못 받을 정도로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기간제, 파견직, 일용직, 임시직, 비정규직, 알바 등의 이름으로 전락하고 있지만 이들의 상황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황해문화>는 특집에서 인간으로서 무시당하고 경제발전의 도구로 이용되어온 이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먼저 309일 동안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웠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노동자, 그 부끄럽고 고단한 이름'이란 글에서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이력을 돌아보며 노동자라는 이름이 부끄럽다가 슬프다가 자랑스럽다가 결국은 그 이름 아래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펼쳐놓는다. 그는 노동의 가치를 세워달라고, 최소한의 노사간 합의라도 이행되게 해 달라고 이야기 한다.

공유정옥은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사회'라는 글에서 하루 평균 6명이 목숨을 잃는 한국의 산업재해의 현실을 통해 이 땅에서 노동자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찮게 취급당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자본가들에게 산업재해란 그저 한 건의 손비처리 대상에 불과하며 속도와 강도만을 강조하는 생산공정에서 재해는 필연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비인간적 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은 재해, 후유증, 후유장애에 의한 자살, 과로사, 과로 자살, 각종 직업병, 그리고 고용불안에 의한 정신질병 등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들을 낱낱이 열거한다.

연정은 르포 '2012 대한민국, 노동자 다큐멘터리'에서 온갖 이유로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한문 앞에서 추석 합동차례를 지내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영남대의료원, 코오롱 노동자 등 장기농성자들의 이야기, 1789일째 농성중인 재능교육 방문교사들, 기획부도와 복직명령 미이행으로 고통받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 서울시의 다산콜센터 외주 하청노동자들, 국공립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예술노동자들, 조리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때로는 공포스럽고 때로는 기상천외한 부당노동행위들과 그에 대처하는 이들의 외롭고 힘겨운 싸움들을 전한다.

그의 글을 좇다 보면 언어도단에 가까운 희생 위에서 만들어진 오늘의 한국사회가 과연 정상사회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한윤형은 '사람들은 왜 파업을 불편해 하는가'에서 이른바 일반시민들이 왜 노동자들의 파업, 농성 등 단체행동에 대해 심리적 거부감을 가지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그 회사의 노동조건이 나쁘면 퇴사하고 다른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하면 될 것 아닌가, 일부 소수 운동권들이 다수 노동자들을 선동하여 분쟁을 일으키는 것 아닌가 하는 낯익은 오해로부터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시선에서 보는 것과 같은 '배부른 노동귀족들의 밥그릇 투정'식의 논리나 정리해고 불가피론, 즉 이른바 유연안정성 테제 같은 자유주의 노동경제이론들, 그리고 한국사회 고유의 애국으로서의 기업활동 논리나 노동 경시 논리 등을 거론한다.

나아가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을 동정이 필요한 피해자들로 고정시키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그런 피해자의 모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바로 비난을 퍼붓는 식의 피해자 서사화 경향도 날카롭게 지적해낸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운동은 아직도 정당한 시민적 권리운동이 아니라 극한에 몰린 불행한 피해자들의 생존권운동으로 강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집 마지막으로 서동진은 '노동자 없는 노동의 세계'란 글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한다.

자본가들은 개인으로서 계급적 행동을 할 수 있지만, 노동자들은 (자신의 운명이 자본가에게 속박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을 개인으로부터 분리해야만 비로소 계급적일 수 있다는 데서 그 어려움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산업예비군이라는 말에서 보듯 자본가들은 언제나 존재하는 잉여노동력 덕분에 자의적으로 노동의 가치를 정하고 그에 따라 최소한의 임금만 주는 것 이외의 노동자를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게 돼 있다.

게다가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오직 노동만 존재할 뿐, 노동자라는 계급적 정체성은 남김없이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 맞서는 계급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들 자신의 사회적 시민적 권리를 발견하고 주장하며 자신을 계급적인 정치적 주체로 만들어 국가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본가들을 압박하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한다.

특집 이외의 글 중에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의 '용역폭력이 활개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라는 글은 특집과 연관이 있다.

그는 사설용역폭력의 역사를 다루면서 '시장 전체주의'가 만연한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기업이 노조파괴업무를 사설용역폭력업체에 하청주고, 국가는 사설폭력을 묵인하거나 공공연히 한편이 되어 움직이는 상황을 비판적 시각으로 살핀다.

미디어충청 정재은 기자는 '노동 현장에 투입되는 폭력컨설팅'이란 글을 통해사설용역업체의 움직임과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유성기업, KEC, SJM 등 노동현장에 투입되는 사설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노조의 입으로 직접 듣는다.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 고용, 경찰의 묵인, 경영컨설팅이라는 명목으로 노조활동을 막으면서 사측에 전방위 로비행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난 상황 등을 생생하게 설명한다.

/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