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600년 천년을 내다본다
   
▲ 남태령 옛길.


경기, 수많은 문화자원 '생산·경제동력

수도권 형성근간 한국근대화 주역 활약

서울 배후지' 벗어나 고유정체성 찾아야



연중기획 '경기도 600년 천년을 내다본다'의 연재를 마친다. 600년이라는 긴 이야긴데, 33회 연재로 간단히 추슬러 보았다.

2014년이면 경기도가 현재와 같은 영역을 구축하고 '경기도'라는 행정명칭을 사용한지 600년이 되는 해이다. 또 2018년이면 '경기(京畿)'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지 천년이 된다.

'경기도 600년'을 앞두고 인천일보는 경기도의 정체성과 문화원형의 재발견에 나섰다. 경기도의 뿌리와 현주소를 진단하고, 새로운 경기 천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부터 ▲한반도의 중심, 경기의 뿌리 ▲600년의 역사, 문화원형을 찾아서<인문, 자연, 역사> ▲디지털 문명의 중심, 세계를 품다 등을 주제로 8개월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했다.

경기도 600년은 많은 역사문화 자원을 생산했다. 곳곳에 문화원형질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 역사문화자원을 새롭게 발굴하고, 콘텐츠화해 경기도 미래 경제를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경기도는 문화와 역사의 중심이었다. 국방과 근기사진(根畿四陣)을 통해 왕권을 수호하고 도성을 지키는 간성이었다. 조선시대부터 경기 지역은 모든 당색이 공존하던 곳이다.

조선시대가 끝나고 일제를 거쳐 국제(國體)가 바뀌면서 경기도는 큰 변화를 겪는다. 인천으로 갈라지고, 서울로 편입되고, 북한으로 떨어져 나갔다. 행정구역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 역할과 위상도 달라졌다.

경기도는 서울·인천과 함께 수도권을 형성하며 한국 근대화의 중심지였고 역동성의 근간이었다. 인구도 서울보다 더 많은 1200만명이 넘었다. 수도권 표를 장악하지 못하면 대권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경기도가 정말 대한민국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느냐, 되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5가지 과제를 던진다.
 

   
▲ 여주 신륵사의 강월헌과 여강. 6각형의 정자와 나옹선사의 화장터에 건립된 4층 석탑 사이로 아름다운 강, 여강이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이정훈·한현숙(도시브랜드 정체성 개발 방법론 연구, 경기개발연구원, 2007)은 경기도의 정체성이 세 단계로 변화했으며, 현재 시점에서 경기도 정체성 정립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했다.

그들은 경기도의 정체성 변화 단계를 첫째, 1970년대 이전 수도 서울의 배후지인 근교농업지역 시기, 둘째, 1970~1980년대 서울의 도시팽창 과정에서 밀려난 기능들의 수용지로써의 교외화(suburbanize) 시기, 셋째,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서울 엑소더스(Seoul exodus)를 통한 중심성 형성시기로 구분했다.

1990년대 이전의 경기도는 정책적으로 수도 서울의 배후지 혹은 기능의 수용지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 뚜렷한 정체성을 갖지 못했으나, 199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나라 첨단산업과 R&D 중심지인 동시에 새로운 여가문화의 중심지로써 발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도는 '서울과 가까운 곳'이다. 수도권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독특한 매력이나 특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대체 '경기도'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연재를 마치면서 남긴 첫번째 과제다.
이 같은 정체성 문제뿐만 아니라 수도권 규제 등 산적한 현안들이 너무 많다.

찬찬히 들어다 본 경기도의 속살은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경기도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묶여 과밀지역은 더욱 과밀화되고, 외곽지역은 더욱 낙후돼 지역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경기북부 지역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수도권의 식수를 책임지는 곳이면서도 오히려 각종 규제로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간의 문화적 경제적 차이도 크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두번째 과제다.

또 경기도 역사와 문화는 수도 서울의 주변부 역사와 문화라고 홀대를 받았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세번째 과제다.

인구가 많다고는 하나 아직도 일부 도시는 서울의 베드타운이다. 하지만 지방에서 올라오고, 서울에서 내려 온 사람들을 받아주고, 또 돌아갈 때는 보내주는 곳이다. 이러한 경기도만의 특징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네번째 과제다.
 

   
▲ 민통선 안쪽에 위치한 도라산역.


산업화 과정에서 수출 역군들이 땀 흘렸던 흔적들, 근대 문화유산들은 파괴돼 가고 있다. 대안이 있는가? 다섯번째 과제다.

적어도 600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600가지 문제는 600가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문들을 과제로 남겼다는 점에서 '경기도 600년' 이야기는 미완이다.

2018년이면 '경기 천년'이 되는 해이다. 고려가 1018년(현종9) 수도 개경과 그 인근 지역을 묶어 '경기(京畿)'라는 이름의 행정구역을 처음 사용한다. 경기제(京畿制)가 중앙에서 분리되어 지방제도로 된 것은 고려 후기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가 성립되면서부터다.


이어 1414년(태종14) 1월 관제를 고치면서 경기를 경기좌도와 경기우도를 합해 '경기도'라고 했다. 새로운 경기 천년은 경기도 600년이 남긴 과제들을 풀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 정조대왕격쟁 재현.


여전히 경기도는 서울시민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고, 지방에서 올라 온 사람들을 수용하고, 서울에서 내려 온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역동성이 살아있는 곳이다.

결국, 경기도 600년이 남긴 과제는 경기 도민의 몫이다. 왜냐하면 경기도는 여전히 역사문화의 보고이며, 인재의 보고다. 또 물산·사람·정보·문화가 소통하는 회통처이며, 다양성을 담아내는 소망의 땅이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분열된 문화를 하나로 모으고, 앞선 문물을 세계로 전파하는 열린 공간이었다.

/글 이동화·사진 김철빈기자 itimes21@itimes.co.kr



● 연재를 마치며 …

여러 가지로 부족했다. 기자의 전문성 한계를 실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600년'이라는 큰 역사의 줄기와 맥을 짚을 수 있었던 것은 고맙고 감사한 많은 멘토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음은 취재 과정에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다.

▲청진동 해장국집
서울 종로 청진동에 맛있는 해장국 집이 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 7시, 그곳에서 윤여빈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 학예팀장을 만났다.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보니 서울에서 살고 있는 윤 팀장과 새벽 해장국 약속을 한 것이다.
윤 팀장은 이번 연재의 시작부터 끝까지 매 회마다 자문을 해 준 멘토였다. 인왕산 등산길과 삼청동길, 종로, 인사동, 회화동길을 걸었다. '경기도 600년' 이야기는 그 때 윤 팀장이 들려 준 이야기가 절반이다.

▲DMZ 투어
군 부대에서 훈련 관계로 DMZ 취재 일정을 연기했다. 낭패였다. 어쩔 수 없이 토요일 승용차를 타고 가벼운 마음으로 통일로를 달렸다. 오두산전망대를 거쳐 임진각에 도착했다. 2년 전에 대성동 마을과 해마루촌을 취재했던 터라 철책선 분위기 만이라도 파악하려던 요령이었다. 하지만 내친김에 임진각에서 DMZ투어로 취재를 대신했다.

▲부대찌개 두번 먹다
부대찌개를 취재하려 의정부에 갔다. 전통의 맛을 고수하고 있다는 집에서 부대찌개에 저녁을 먹었다. 이어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해 준다는 또 다른 부대찌개 집을 찾았다. 배부름에도 불구하고 또 먹어야 했다.

▲광명 민회빈 강씨 무덤
지난 6월 여성 인물 취재 때이다. 비운의 여인 민회빈 강씨 무덤은 광명 애기능 저수지를 끼고 비포장길을 올라가다보니 야트막한 산자락에 있었다.
가뭄이 한창일 때여서 무덤 잔디가 말라 죽어갔다. 지난 늦가을에 다시 가 보았다. 땅 주인이 무덤 근처 진입로를 막아 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경기 천년'의 역사를 더 알찬 내용으로 독자 여러분에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이동화·사진 김철빈기자 itimes21@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