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기까지 나는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으며 여러 가지 잡다한 부침을 겪어야 했다.

두 달 남짓 걸렸나? 시간은 중요하지 않지만 때로는 시간은 망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을 잊어버리기도 했고 전개되는 이야기를 놓쳐 내 머릿속에서 소설의 형태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나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철학적 사유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듯 싶다.

이런 느낌은 알랭 드 보통의 원래 직업이 철학자이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알랭 드 보통은 소설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로 사랑이라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주제를 인간 삶의 한 단면을 사유하는 과정으로서 풀어낸다.

작가는 자신만의 사랑 이야기를 아리스토텔레스, 비트겐슈타인, 역사, 종교 심지어는 마르크스주의까지 끌어들여 첫키스에서부터 다툼, 화해, 친밀함과 부드러움, 갈등, 파국, 이별, 새로운 만남 등 인간의 사랑과 연애 과정을 기술한다.

예를 들자면 그는 사랑의 필요충분조건인 만남 즉 우연한 만남에 대해서 '우연'과 '필연'이라는 철학의 기초적 주제를 다룬다.

"언젠가 꿈속에 그리던 남자나 여자와 마주치게 되는 것을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용서받을 수 없을까? 한번만이라도 이성의 검열에서 벗어나서 그 만남이 우리의 낭만적 운명에서 정해진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라는 식이다.

소설의 화자는 '클로이'라는 여성을 12월의 어느 아침 영국해협을 건너가는 브리티시항공 보잉 767에서 서로 옆자리에 앉으면서 이 지루한(내가 두 달여 동안 읽은 시간 간격의 형태!) 그렇지만 알콩달콩 흥미진진한 사랑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제 작가의 분신이랄 수 있는 남자주인공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작가는 그를 통해 '사랑'을 철학적으로 정의한다.

사랑을 상대방의 육체적 매력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구성하고 있는 그의 모든 실체에 대한 지적인 갈망이어야 한다고 정의 내린다.

"그녀의 모든 농담을, 실마리를 놓치곤 하는 모든 사유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클로이를 쫓아가 그녀에게 가능한 모든 자아들 속으로 들어가 볼 준비, 그녀의 모든 기억을 목록으로 차곡차곡 분류할 준비, 그녀의 유년의 역사가가 될 준비, 그녀의 모든 사랑, 공포, 증오에 대해서 배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알랭 드 보통 식의 사랑이라면 이 세상에서 연애를 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드물 것이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자면 철인만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이리라. 철인 외의 사람들의 사랑이란 성욕, 번식욕! 하지만 비록 우리들이 외롭거나 심심해서 그밖에 다른 자질구레한 이유로 연애에 빠져들고 혹은 이별을 하고 늙어가지만 그러한 평범한 삶 자체에도 비범한 사랑의 광맥이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삶이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갱도에서 광맥을 발견하지 못한다 뿐이지 반드시 존재하는…

어쨌든 알랭 드 보통의 방식대로라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인 소통 방식이 수학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처럼 복잡해지고 만다.

그러나 사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바보짓을 하진 말자! 소설 속에서 남자주인공이 "열정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 순간적으로 홀리는 것과 사랑인지 뭔지를 구별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입니다"라고 말하자 여자주인공 클로이가 "맞아요. 그런데 이 케이크 역겹지 않아요?"라고 '쿨'하게 답하는 것처럼.

자, 이제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지고 어떤 결말이 주어졌을까?

뭐 결론이야 뻔히 정해져있다.

사랑 뒤에 이별이라는(아! 때로는 대중가요 같은 말이 진리를 꿰뚫곤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목적은 사랑이라는 가슴앓이를 통속적으로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작가는 "사람은 자신에게 전 세계와 다름없는 타자의 눈을 통해서 존재의 정통성을 확보"하는데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된 정체성을 소유할 능력을 상실한다"고 말한다.

읽어볼만 한 책이니 애니팡만 붙들고 있지 말고 시간 날 때 한번 읽어보시길.

/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