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일이라니? 인민반에서도 인구 일로 시끄럽게 굴고 기래?』

 곽병룡 상좌가 물었다. 정남숙은 또다시 서럽고 분한 생각이 들어 생활총화를 하다 비판당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시끄럽게 굴기만 하면 다행이게요. 당에서 무슨 결정 지시가 떨어졌는지, 세상에 길세, 리순호 하고 최완희 그 에미나이들이 짝짜꿍 이 되어 가지고서리 나를 비판하며 우리 가족 전체를 추방시키자고 선동합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찾아와 죽어 가는 자기 자식들 좀 살려 달라고 매달리면서 울고불고 하던 그 에미나이들이 말이라요… 두 눈 내리깔고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던 그 에미나이들을 생각하면 내래 분해서 지금도 치가 떨려요.』

 정남숙은 금방 두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을 매단 채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곽병룡 상좌는 말없이 아내의 거동을 지켜보다 또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신은 새벽같이 도 안전국으로 불려가 수많은 당원들 앞에서 비판을 당하다 당원권리정지처분을 받고 돌아오고, 안해는 인민반생활총화에 불려나가 이웃들로부터 자식들 사상교양을 잘못시켰다고 비판을 당하다 결국은 막내딸 인화처럼 이곳에서 살지도 못하게 추방대상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말에 어이없이 웃고 말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보기 민망할 정도로 면전에서 굽실거리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그 동안의 정리마저 야박하게 끊으면서 한 하늘을 이고 같이 살지 못하겠다고 그들 가족에 대해 추방까지 결의하는가 말이다. 곽병룡 상좌는 안해가 전해주는 이웃들의 변한 모습을 생각하다 자신도 모르게 배신감이 밀려와 또다시 껄껄껄 웃었다.

 권력이란 과연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자신과 안해는 이런 심성의 소유자들을 안전하게 잘 살도록 해주기 위해 휴식마저 잊으며 그토록 애쓰며 살아왔던가? 느닷없이 자신의 지난 반생이 허망해지면서 허리가 꺾어지는 듯한 절망감이 밀려와 곽병룡 상좌는 혓바닥이 따갑도록 줄담배를 피워댔다.

 『배은망덕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비록 자기 자식이 조국과 인민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넘어가서 얼떨결에 배신자의 아비가 되긴 했지만 아직 수사가 끝이 나지 않아 진정한 탈출동기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십 수년씩 얼굴을 마주보며 함께 살아온 이웃들이 그럴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우선 괘씸했다.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찾아와 살려 달라고 아픈 소리를 하면서 매달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 저희들이 매달리던 시절은 다 잊어버리고 한 하늘을 이고 같이 살지 못하겠다고 전직 안전부장 가족들을 추방시키자고 세포 비서와 짜고 선동을 해? 배은 망덕도 유만부동이지, 내가 아직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허, 이거야 참! 안해와 한통속이 되어 체통 없이 욕을 하면서 소리를 칠 수도 없고 내래 이 사람들을 어드러케 혼내주어야 저들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