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모

노래를 읽었다. "아니, 노래를 귀로 듣지 않고 읽다니 무슨 정신 나간 소리란 말이냐 ?"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귀로 들리는 건 노래가 아니다. 귀로 들리는 건 소리일 뿐이다. 영혼을 울리는 소리야말로 비로소 노래라고 지칭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여태껏 들어왔던 헤아릴 수 없는 노래들은 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래는 노래방에서 악다구니로 불러대는 것은 아니다. 마이크를 그악스럽게 움켜쥐고, 술에 취해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화면에 흘러나오는 가사 자막을 쫓으며 부르는 것은 결코 노래가 아니다. 악담을 퍼붓자면 그것은 술주정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노래 한 곡조 부르자며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하면 아연실색하고 만다.

대신 나는 진짜 노래를 듣곤 한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길거리에 버려진 고물 앰프와 스피커를 주워다가 집 책상 밑에 짱박아놓고 동인천 중고 전자상가에서 단돈 만원을 주고 산 턴테이블을 연결해 나만의 음악실을 꾸며놓았다. 과거 내 취미는 청계천 거리를 산책하며 거리 풍경을 구경하며 헌책과 중고음반(흔히 레코드판이라 부르는 엘피(LP)을 사 모으는 것이었다. 이 취미가 없어진 것은 '청계'라는 호를 가진 정치인이 청계천 복원 공사를 하며 그 주변의 상인들과 노점상들을 어디론가 보내버린 이후이다.

어쨌든 그 당시 나는 청계천에서 가왕 조용필의 빅히트 앨범인 1집 <창밖의 여자>부터 엘피(LP)로 발매된 그의 모든 정규 앨범과 일본 NHK 실황공연 및 뉴욕 카네기홀 공연 등 비정규 음반을 모두 사서 내가 꾸며놓은 고물 음악실에서 틀어놓고 감상했다. 배호, 펄시스터즈, 패티김, 혜은이 같은 노땅 가수부터 신중현과 엽전들, 동서남북, 신촌블루스, 송골매, 산울림, 작은거인, 봄여름가을겨울, 들국화, 시나위, 부활 등 록밴드들 그리고 김민기, 한대수, 서유석, 이정선, 시인과 촌장, 하덕규, 어떤날, 따로또같이, 정태춘, 김목경, 김광석 등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포크 가수들의 음반들까지.

아마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우리 가요계를 풍미했던 가수들의 앨범을 거의 모두 사 모았고 수십 번씩 들었을 것이다. 흔히 혹자들은 독서광(?)처럼 보이는 외모 때문에 내가 엄청난 책을 소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책 말고도 1000여장이 넘는 엘피(LP)와 씨디(CD)를 가지고 있다. 기구한 팔자 때문에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자주 다녀서 이삿짐을 쌀 때마다 산더미 같은 책과 음반들로 골머리를 앓곤 했지만 그것들은 내 소중한 보물이자 벗이었기 때문에 나는 짐 꾸리는 고역을 기꺼이 감수하곤 했다.

나는 예전처럼 자주 노래를 듣진 못하지만 가끔 노래를 듣곤 한다. 재킷에서 동그란 음반을 꺼내고, 거기에 분무기로 물을 뿜고 천으로 먼지를 닦아내고, 조심스럽게 턴테이블에 올리고, 회전 속도와 볼륨을 조절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내겐 즐거움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귀찮을 수도 있는 분주한 작업 끝에 드디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그 순간 나는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읽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흐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어루만져주기도 하며, 때로는 흥에 겨워하기도 하는 노래를 읽는다. 가수의 호흡과 숨소리 그리고 영혼까지 들리고 보이는 것 같다.

서설이 길었다. 이번 주 '책과 사람'에는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가 쓴 <가수를 말하다>(도서출판 빅하우스)를 소개한다. 이 책은 저자가 20여년간 축적한 인터뷰, 취재자료, 평론을 토대로 엮어 낸 가수와 가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음악 평론가인 저자는 레전드로 불리는 가수들과 전설로 향하는 가수들의 인터뷰와 리뷰를 넘나들며 대한민국 가요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신중현, 조용필, 심수봉을 거쳐 윤수일, 정훈희, 이선희, 이문세, 유재하, 김정호, 서태지, 크라잉넛까지 가수 41명의 가요인생을 정리한다.

저자 임진모는 흥행과 인기, 그 뒤안길로 갈라진 가수의 운명을 지켜보면서 "대중의 인기에 봉사하겠다고 하면 스스로 소비품이라고 인정하는 꼴이다. 음악인은 결국 음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땀 흘린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당장은 빛나지 않더라도 대중들은 쉽게 그를 버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