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600년 천년을 내다본다
   
▲ 수원 팔달구 화서동의 축만제(서호)는 정조가 1799년 수원화성의 자립 기반을 만들기 위해 조성했다. 축만제 너머로 보이는 곳이 서둔동 한국농촌진흥청과 시험연구포장 단지다. /사진=김철빈기자 narodo@itimes.co.kr


3 디지털 문명의 중심, 세계를 품다
1. 농업의 중심지, 경기도


한국농업의 출발지 경기도

200년 축적 영농기술의 메카


FTA·DDA 등 시장개방

산업관점서 위기 아닌 기회



▲한국농업의 출발지
'오늘 우리집 식탁 메뉴는 뭐로 할까? 가격은? 싱싱한가? 안전한가?'

주부는 쌀과 사과, 귤, 상추, 돼지고기, 생닭, 고등어 등 쇼핑리스트를 꼼꼼히 점점하고 가격·신선도·안전성 등을 따져 보고나서 구매를 결정한다.

2007년 12월 이코노미스트는 커버스토리에서 '값싼 식량의 종말(The End of Food)'을 선언했다. 덜먹든지 다른 필수재를 줄여야 한다. FTA는 2009년 기준 세계 기아인구를 10억 명으로 추산했다.

"사람은 모두 음식을 먹고, 전세계 수십억 인구가 농업과 그와 관련된 산업에서 일하고 있다. 식량가격은 모든 사람에게 중대한 일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생사가 걸린 문제다."
<식량의 경제학, 패트릭 웨스트호프, 김화년, 지식의 날개>

경기도는 한국농업의 출발지다. 고대부터 벼농사의 중심지였다. 기원은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포시 가현리 토탄층과 일산 가와지 유적에서는 기원전 2000년쯤에 해당하는 탄화미가 출토됐다. 여주군 흔암리 유적의 청동기시대 집터에서 탄화미가 발견됐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벼농사를 시작했다.

또한 조선 실학자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농서를 저술했으며, 둔전과 이모작, 대동법이 시행된 곳이다. 특히 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려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었던 통일벼를 시험재배, 개발한 곳이 경기 수원이다.
 

   
▲ 경기도농업기술원.



이처럼 경기도에서 출발한 한국농업은 5000년 동안 계속된 배고픔을 해결한 1970년대 녹색혁명을 시작으로 80년대 백색혁명, 90년대 친환경 안전농산물 생산기술을 개발 보급했다. 2000년대에는 단순 식량생산 뿐만 아니라 의약품을 생산하는 등 신기능성에 이어 석유와 같은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 생산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지금, 경기도는 낙농과 화훼, 시설채소 등 근교농업이 발달, 2000만 수도권 인구의 먹거리를 생산 공급하는 한국농업의 젖줄이다.


▲농업기술 개발의 표준지
경기도 수원은 정조 이후 200년 이상 농업 노하우가 축적된 과학영농의 터전이며, 벼종자와 작목 품종 등 한국 농업의 기술개발과 적용의 표준지다.

조선조 정조는 저수지와 둔전(屯田 국영농장)을 수원에 만들었다. 수원화성을 건설하고 자립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축조한 축만제(祝萬堤, 서호)와 축만제둔(서둔), 만석거와 대유둔전(북둔), 만년제와 만년제둔이 그것이다.

특히 축만제는 정조 23년(1799) 화성 서쪽 여기산을 휘감고 흐르는 하천을 막아 만든 저수지로,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국철 1호선 화서역과 수원역 사이 맞은편에 있다.

이처럼 정조는 저수지 농법이라는 그 당시의 첨단 농업을 도입했다. 덕분에 전국이 흉년이어도 수원만은 풍년을 기록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은 의정부 수락산 자락에서 자신의 농사경험을 바탕으로 지은 농업백과사전 '색경(穡經)'을 펴냈다. 또 중국 남경 전당지의 연꽃 씨를 가져와 시흥시 하중동 관곡지에 연을 재배한 조선의 명신이며 농학자인 강희맹(1424~1483년)은 이곳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쓴 '금양잡록(衿陽雜錄)'이라는 실용 농사서를 보급했다.

경기 파주 출신으로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농업전문가였던 풍석 서유구(1764~1845)는 기울어져 가는 조선의 문명을 농촌의 부흥에서부터 이뤄야한다는 사명으로 실용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펴냈다.

일제 통감부는 1906년 우리나라 농업기술의 시험·조사, 지도를 위한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이라는 기관을 수원 서둔동 일대에 설치했다. 이 기관은 농업발전에 기여한 점도 있지만 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 수행에 있어서 첨병 구실을 했다.

이곳에 들어선 한국농촌진흥청은 농업의 발전과 농업인 복지를 위해 농업과학기술의 시험연구사업과 농촌지도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또한 이곳 서둔동 일대에는 4000년 역사의 잠사업(蠶絲業)의 맥을 이어 온 잠업시험장(현 잠사과학박물관)이 있으며, 지금은 서울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대학교가 자리했다.


▲조선시대 진상미, 경기쌀
예부터 경기도에서 생산된 쌀은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리던 진상미로 유명했다. 특히 여주·이천은 전라도 전주·김제·만경, 황해도 연산·봉산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쌀 산지로 유명했다.

이익(1681~1763)은 '성호사설'에서 "여주·이천 사이는 벼가 다른 고장보다 먼저 익으므로 매우 많은 이(利)를 본다"고 했다.

이는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속에서 경기도 쌀이 경제적인 이득을 볼 만큼 수요가 많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또 경기쌀은 풍석 서유구(1764~1845)가 '행포지(杏浦志)'에 "여주·이천에서는 자채(自蔡)라는 조생벼를 재배하여 많은 이익을 본다"고 기록, 그 명성을 뒷바침한다.

이에 앞서 1608년 김육(金堉, 1580~1658)은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대동법(각 지방의 특산물을 공물로 바치던 폐단을 없애고 대신 쌀로 바치게 한 납세제도)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경기 쌀농사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평택 소사동에 대동법시행기념비(大同法施行記念碑)가 세워져 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과 함께 경기도는 전국 평균보다 낮은 기온과 밤낮의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쌀 품종 중 최고라는 추청(秋晴)벼를 재배하는데 적합하다고 한다.

현재 이천 임금님쌀, 안성 맞춤쌀, 김포 금쌀, 파주 임진강쌀 등 도내 각 시군에서 생산되는 200여개의 브랜드 쌀은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아 가장 높은 가격에 유통되고 있다.


▲식량이 안보
지난 달 19일 농림수산식품부는 청와대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국제 곡물가 상승 대응방안'을 보고했다. 이날 정부는 2021년까지 해외 곡물 700만t을 국내에 도입, 국제 곡물가 급등의 충격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는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식량안보는 국방안보, 에너지안보 등과 함께 자국의 안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몇몇 국가들은 식량안보와 관련된 특별한 정책(일본의 비상시 식량안보체계 등)을 수립했다."(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오세익)
 

   
▲ 농촌진흥청이 재배한 대형호박.


여기에 자유무역협정(FTA: Freee Trade Agreement)과 도하개발아젠다(DDA: Doha Development Agenda)로 시장 개방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그 동안 정부는 문민정부 이후 막대한 자금을 투입,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으나 현재 농촌의 상황은 어렵고 미래의 전망 또한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같은 원인을 '농촌 활력론'(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김태명 대표 저자는 "농업에 대한 정치적 판단, 시장실패적 시각에 기초한 공적 자금 투입식의 정책, 단편적이고 임기웅변적인 정책, 방향이 잘못된 목표설정(식량증산과 농촌인구에 집착)"이라고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기농업의 현주소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농업의 시장개방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경기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난해 기준 경기도의 농가수와 농가인구는 13만7548가구, 41만2351명으로 전국대비 각각 11.0%, 13.9%를 차지하며 지속적인 감소추세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농가 인구가 11만2215명으로 도내 농가인구 대비 27.2%로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또 경작규모도 1㏊ 미만의 농가 수가 69.1%로 소농 위주의 농가구조에 엽채류나 근채류 등의 근교농업이 발전했으며, 식량작물의 생산량 비중은 전국 10%대 내외다.

경기개발연구원 이수행 연구위원은 "경기농업은 저임금의 후발개도국보다는 가격경쟁력이 취약하고, 선진농업국보다는 기술경쟁력이 미흡한 넛크래커(Nutcracker, 호두까기 기계 속의 호두와 같은 처지) 현상이 심화되는 위기상황"이라며 "이제 농업을 자본과 기술에 기초한 산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국공립 농업 R&D기관의 연구결과와 농업현장을 결부시켜야만 글로벌 농업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품질개발과 첨단농업, 기술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현재 생산단계에 머물러 있는 안전·안심 농산물 생산을 유통단계로까지 확대하고, 귀농귀촌자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도회지에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할 것"을 제시했다.


/글 이동화·사진 김철빈기자 itimes21@itimes.co.kr


 

   
▲ 이진찬 경기도 농정국장.


인터뷰 / 이진찬 경기도 농정국장


"패배주의 빠질 이유 없어

한국, 부가가치 생산성 높아"


"억대 농가 2만가구 육성"


"패배주의적 가치관에 빠질 이유가 없다. 한국 농업은 농업선진국인 네덜란드나 뉴질랜드보다 부가가치 생산성은 더 높다."

이진찬 경기도 농정국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은 27%(식량자급률 50%)에 불과하지만 채소나 낙농은 100% 자급률을 보이고 있는 만큼 그 동안 우리 농민들이 좁은 농지와 척박한 땅에서 전 국민의 50%인 2500만 국민의 먹거리를 공급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농업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됐음에도 이 정도 업적이면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또 앞으로 우리 농업은 중국과 인도, 일본 등 동북아 인구 15억명에게 공급할 수 있는 고급농산물, 안전한 농산물 생산의 전진기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 만큼 경기농정은 패배주의에서 벗이나 가능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고부가가지 농업, 안전먹거리 제공, 농촌지역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도가 추진하는 새로운 농정의 비전인 '살리고 농정'은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한 것이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농산물 생산과 농업인 소득향상을 위해 농산물 부적합률 제로화, 억대농가 2만여 가구 육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농촌은 산업으로써 농업행정이 아니라 삶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정주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의료와 교육 등 농업인 복지정책으로 전환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신뢰와 선택을 받고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라며 우리 농산물에 대한 사랑과 애호를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농진청 이전부지인 수원 서둔동에 정부가 추진하는 국립농어업박물관의 유치를 제안했다"며 "이는 이전에 따른 농업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훼손하지 않고 공동화도 막을 수 있는 1석3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글 이동화·사진 김철빈기자 itimes21@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