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사성 대감은 소탈한 분이었다. 평소 소타기를 즐겨 고향에 내려갈때도 그렇게 했다. 그러니 남들이 신분을 낮춰 볼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주막에 들렀는데 초라하게 여긴 한 선비가 시 짓기나 하자며 수작을 걸어왔다. 대감도 심심하던 터에 그러자면서 우정 자신은 무식하니 공(公)과 당(堂)으로 운을 정하자고 했다.

 먼저 맹사성이 『무슨 일로 서울에 가는공』하자 선비가 『벼슬하러 간당』 했고 『내가 주선하면 어떨공』하니 『그리 할 수는 없당』이라고 했다. 얼마후 공교롭게도 대감은 시험을 보러 서울에 온 선비와 마주쳤다. 짓궂게 맹대감이 『요새 재미가 어떤공』하고 묻자 선비는 머리를 들지 못하면서 『죽여지이당』 하더라는 것이었다.

 주막이 아니라 어느 노변누각에서의 일이라고도 하는데 이상의 우화는 맹사성의 원만한 성격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젊은 선비를 통해 결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선 안된다는 교훈도 한다. 끝머리의 운자 『…당』은 따지고 보면 완전한 반말이다. 젊은이가 노인의 차림세만 보고 반말을 마구 지껄인 셈이다.

 반말이란 손아랫 사람에게 하듯 낮추어 하는 말이다. 사전에선 존대어도 하대어도 아닌 말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말은 세계의 어느나라 보다 존대어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배우기 어렵다고 푸념도 한다. 예전엔 존대어를 쓰느냐 반말을 쓰느냐로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양민은 천민에게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반말을 했고 천민이면 나이가 많아도 어린 사람에게 반말을 못했다.

 근래 말의 혼란이 심하다. 아랫사람이 어른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가 하면 언어의 표현도 상스럽다. 뿐만 아니라 무속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종교인 의료인중에도 반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 반말은 시비의 발단이 된다.

 모 구청의 비서실 직원이 상급자에게 마구 반말 구설수에 오르고 있단다. 원래 우리의 언어관례는 윗사람에게는 물론 부부나 형제간에도 존대어를 씀으로써 예의를 다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