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동지! 부장동지의 그 깊고 넓은 마음을 우리 감찰과 동무들인들 어찌 모르갔습네까? 집으로 불러 주시지 않아도 우리 감찰과 동무들은 부장동지의 깊은 마음을 헤아릴 것입네다. 비록 몸은 떠나가시더라도 함께 복무할 때의 정리를 생각해서라도 저와 감찰과 동무들 얼굴 잊지 마시고 제발 건강 조심하십시오. 오래오래 건강하게,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당적 원칙을 준수하며 굳건하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또 다시 만나 만단 소회 풀면서 살아갈 날도 있지 않갔습네까?』

 백창도 과장은 곽병룡 상좌의 손을 잡은 채 심중에 감춰놓은 말 한 마디를 그예 내뱉고 말았다. 곽병룡 상좌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당적 원칙을 준수하며 굳건하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또 다시 만나 만단 소회 풀면서 살아갈 날도 있지 않갔습네까?』 하고 되묻는 백창도 과장의 말이 가슴을 뒤흔드는 것 같아 잠시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의 얼굴만 쳐다보며 굳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에 껄껄껄 웃으며 『그렇고 말고!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당적 원칙을 준수하며 굳건하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분명히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일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좌절하지 말게. 다시 만나는 날, 만단 소회라도 풀면서 술이라도 한 잔 나눌 수 있게 말일쎄…』 하면서 용기를 안겨 주었다. 백창도 과장은 그 말이 그렇게도 좋은 듯 덩달아 껄껄껄 웃었다.

 『아, 기럼요. 그저 부장동지 건강하시기만을 빌갔습네다.』

 『나는 비록 우리 조선노동당의 앞날과 당적 기강 확립을 위해 내 자식의 소행에 책임을 지고 떠나는 몸이 되었지만 내 동생들은 중앙당과 의주군 보위부에서 그대로 복무하고 있네. 앞으로 어려운 점 있으면 찾아가서 내 이야기하면서 의논해보게. 내가 백동무 이야기는 아우들한테 여러 차례 해주어서 중앙당에 있는 동생이나 보위부에 있는 막내동생도 잊지 않고 있을 걸세.』

 백창도 과장은 고맙다고 다시 인사하며 곽병룡 상좌가 일러준 곽병호 과장과 곽병기 대위의 연락처를 비망록에 적었다. 그때 경리과에 식량배급정지증명서를 떼러 갔던 수사관이 돌아왔다. 곽병룡 상좌는 감찰과 일일총화 할 시간이 가까워 온다면서 백창도 과장이 더 앉았다가 가라는 권유도 뿌리친 채 복도로 나왔다….

 이 무렵, 인영은 은혜역 대합실에서 열차시간표를 지켜보다 광장으로 나왔다. 낮에 출발하는 평양행 열차는 이미 떠나버렸고, 밤에 출발하는 열차는 두어 시간 더 기다려야만 기차표를 뗄 수 있었다. 그는 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도 뭣해서 역 광장 좌측에 있는 째포촌(북송 제일교포들이 모여 사는 주택가)으로 걸어갔다. 평양에 나가 공부하느라 근간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인민학교 시절 맛있는 일제 사탕과자와 학용품을 갖다주면서 유난히도 자신을 따르던 우성이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