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詩세계 전파'26인의 공감 시편
'삶·모순된 세계·자연'주제로 시인 단상 담아
   
 


인천작가회의 시인 스물여섯 명의 시를 수록하고 있는 시선집 <빨강의 정점>(도서출판 작가들)이 출간됐다. 인천작가회의는 <자연바다> 등 그동안 공동 시선집을 발간하며 지역 문단과 우리 문단에 인천의 시세계를 알려왔다.

이번에 출간한 <빨강의 정점>은 고철, 김명남, 김정희, 김영언, 류민영, 박성한, 박인자, 박일환, 손제섭, 손한옥, 신현수, 이가림, 이경림, 이명희, 이설야, 이성혜, 이세기, 정민나, 정세훈, 정충화, 조정인, 조혜영, 천금순, 최종천, 하승무, 호인수 스물여섯 명의 시인들이 각자 최근작 3편의 시를 담아내고 있다.

시집은 1부 '생구(生口)', 2부 '묵언처럼 곰곰', 3부 '뜨거운 것이 식어간다'로 구성돼 있다.

1부 '생구'에서는 삶의 의미, 삶의 진정성에 대한 시인들의 단상을 담은 시들로 채워졌다.

삶의 단상들이 머릿속에 머무는 것이 아닌 세상 밖으로 튀어나가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편들이 시 애독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김명남은 '무덤꽃'에서 "자드락길 한구석에 홀로 있는 저 무덤은 누군가에겐 생의 전부다"라며 삶에 내재돼 있는 유한성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가림은 '생구'에서 찐 감자를 먹고 있던 화자가 주변을 기웃거리는 토종닭에게 감자 껍질을 던져주고 개미떼들이 껍질을 떠메고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아아,/하늘아래/목숨 붙어 있는 것들은 다/서로 밥을 나눠 먹어야 하는/어쩔 수 없는/생구들이로구나!"며 생존을 위한 삶의 치열성에 대한 깨달음을 간명하게 그려낸다.

2부 '묵언처럼 곰곰'에서는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세계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들의 현실 참여적인 시들이 번뜩인다. 먼저 박일환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와 크레인 농성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한 희망버스 운동 등 일련의 과정을 '잔인한 희망'과 '영도경찰서를 나와'라는 시로 관통하고 있다.

정세훈은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야만적인 우리나라 노동현실을 '부평4공단 여공'을 통해 고발하며 분노만이 아닌 낭만과 향수를 통해 노동이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상처받은 인간을 치유할 수 있는 기본가치임을 역설한다.

조혜영은 '콜트농성장에서'를 통해 노동자를 이윤을 뽑아내는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 자본주의를 고발하며 노동자들과의 유대와 연대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초석이라고 말한다.

3부 '뜨거운 것이 식어간다'는 치열했던 삶의 현장에서 잠시 비껴나 자연과 휴식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시세계를 담고 있다. 하지만 시인들의 휴식과 자연으로의 회귀는 여전히 모순적인 사회현실 때문에 불편하기만 하다.

호인수는 '점봉산 곰배령'에서 "주민등록증 확인하고/입산허가증 목에 걸어주고/숲이 나를 검문한다/불신의 세상/용케도 환갑을 넘겼다"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선 대한민국 산천 어느 곳에서도 자유롭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다.

하승무는 '정동길을 걸으며', '정서진 연가'라는 시에서 삶은 결국 기나긴 여정이며 그래서 그리움이 사무친다고 말하고 있다. 152쪽, 8000원.

/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