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등 세계 문호 작품 총집합
곶감 빼먹듯 한권씩 탐독해볼까

출판사 창비가 세계문학 전집 시리즈를 발간한다고 한다. 문학 애호가 또는 독서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소설 읽기를 음주가무 다음으로 즐겨하는 나에게도 호기심이 발동하는 소식이다.

사실 나는 문학 전집을 보며 자라왔다. 우리 집 다락방에 켜켜이 아니 마구잡이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책들과 부친의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하드커버 세계문학 전집을 곶감 빼먹듯이 한 권씩 빼 읽으며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왔다.

내 자랑 같아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초등학생시절부터 엄청난 독서광이자 소설광이었다. 동네 꼬맹이 친구들이 운동장과 산과 들에서 뛰어놀 때 나는 다락방에 틀어박혀서 소설책을 읽었다. 마루에 엎어져 책을 읽기도 하고 옥상에 올라가 누워 책을 읽기도 했다.

이미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효석, 김동인, 이광수, 주요섭 등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개척자들의 소설을 섭렵했으며 지금은 폐교했지만 명문(?) 대건중에 입학해서는 도서부에 가입해 엄청난 책들을 읽어댔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을 비롯해 일본의 대문호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들과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 마르케스, 보르헤스의 작품들과 그리고 당대의 영웅 장총찬과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으로밖에 짐작할 수 없는 묘령의 여인 다혜가 등장하는 <인간시장> 시리즈까지.

나는 소설의 세계에서 수놓아지는 액션 러브 로망에 빠져 수업 중에도 몰래 책을 읽었고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차멀미로 몇 번 '오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버스 안에서도 책에 눈을 떼지 않으며 책 읽는 즐거움에 취해 있었다.

그렇게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청소년기에 읽었던 소설책들은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으며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대할 수 있는 감성을 형성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학에 들어가 소설책 읽기를 중단하고 재미없는 철학책과 사회과학 서적 등 흔히 불온서적이라 일컬어지는 책들을 읽으며 똥볼 차는 시절을 보냈었다. 물론 지금 나는 그건 뭐 암울했던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이번에 창비에서 세계문학 전집 시리즈를 발간한다는 소식은 내게는 정말 희소식이랄 수 있다.

나는 국내 작가들의 소설보다는 외국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 외국소설 좋아한다고 해서 주체성 없는 사람으로 흘겨보진 마시기를. 뭐 우리 가요보다 팝과 재즈, 클래식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출판사 창비는 세르반테스, 괴테, 발자크, 톨스토이 등 세계 주요 고전 작가들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인도, 아프리카 문학 등 비서구권문학의 주요 작품과 7개 어권별 대표시선, 중단편선집 등을 고루 안배하여 세계문학 시리즈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창비는 국내 초역작들인 시마자끼 토오손의 <신생>, 카메룬 작가 페르디낭 오요노의 <어느 늙은 흑인과 메달>, 우루과이 작가 마리오 베네데티의 <휴전>, 아르헨티나 작가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아르헨티나인들과 함께한 블랙 노벨> 등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란 작가 마흐무드 다울라타바디의 <대령>, 시리아 작가 하림 바라카트의 <먼지의 나날>, 인도 작가 비샴 사니의 <맨션>, 남아프리카 여성작가 베시 헤드의 <권력의 문제>, 짐바브웨 작가 첸제라이 호베의 <뼈들> 등 제3세계 작가들의 작품들도 번역 출간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발간 예정 소식만 들어도 마치 며칠 굶고 뷔페에 온 기분이 든다. 마른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격이라고나 할까. 사실 그 동안 우리 출판계는 일본 대중소설 발간이 붐을 이루고 있어 외국의 본격문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중국의 류전윈, 옌롄커, 위화 등의 작품이 내게 위안을 주었지만 히딩크 감독의 말마따나 나는 여전히 배고팠다.

지난 초여름에 나는 인천을 방문한 중국 작가 류전윈과 옌롄커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과 중국 당대의 문학과 중국사회의 현실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들과 동등한 지적 인격체로서 당대의 세계를 논할 수 있었던 데는 바로 독서의 힘이 밑바탕 됐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문학은 단돈 몇 만원으로 세계의 당대 현실과 인간 삶을 섭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나는 믿고 있다. 독자들도 이번 가을과 겨울, 세계문학에 흠뻑 빠져들길.


/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