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혁신기자의 책과 사람
- 박순찬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유신독재 체제를 비롯한 역사문제에 대해 시종일관 자신의 생각을 굽힌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신의 부친인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부터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한 유신체제 그리고 박정희가 철권을 휘두르며 집권했던 시기에 대해 미화내지는 정당화로 일관해왔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국민들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녀의 사과가 정치적 퍼포먼스인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는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이 판단할 몫이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국민'을 신뢰하지 않는다.

박정희의 망령은 아직도 떠돌고 있다. 독재자에 대한 향수일까? 살인과 납치, 고문으로 점철된 시대의 가학을 즐기는 것일까?

박 후보의 사과는 별개로 그 사과를 불러일으킨 박정희에 대해,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해,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에 대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한다. 유신독재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이 워낙 방대하니만큼 일반 텍스트로는 읽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책이 바로 만화책이다. 온 가족이 함께 돌려 볼 수 있는 점에서 아주 유용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뉴스툰에서 기획하고 시사만평 작가 백무현이 글을 쓰고 시사만화가 박순찬이 그린 <만화 박정희>(도서출판 시대의창)이다.

사실 내가 박정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그가 우리나라의 왕인 줄 알았다. 그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수컷 어린이들에게 주먹이 곧 진리이자 정의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인물이다. 어린 시절, 모 출판사 위인전집에서 퀴리부인, 슈바이처, 노벨 등 위대한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박정희 위인전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교사의 길을 걷다가 뜻한 바 있어 일본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는 박정희의 삶을 미화하고 있었으며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이라고 칭송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책이자 용비어천가이다.

그나마 <만화 박정희>를 읽어보면서 박정희 정권의 실체를 알아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우선 박정희가 독립군을 소탕하는 일본군 장교였고 그때 이름이 다카키 마사오라는 것부터 시작하자. 친일 경력을 갖고 있는 박정희는 이후 남로당에 입당해 좌익으로 변신한다. 좌익으로의 변신은 일본 만주군 장교 신분을 세탁하려는 것이었을까? 이후 그는 끊임없이 권력 찬탈을 꿈꿔왔으며 드디어 장면 정부시절 이를 성공시킨다.

그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벌인 일들은 정말 많다. 반공을 국시로 한 그는 <민족일보> 사건을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정치공작사령부인 중앙정보부를 창설한다. 이어 부일장학회를 강탈해 정수장학회를 만들었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아직도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도 정수장학회 문제를 제기한 이유로 해고돼 편집국 선후배들과 함께 노상에서 농성하고 있다.

박 정권은 언론 탄압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야당지인 경향신문을 강제 매각하도록 했으며, 정치 라이벌인 김대중을 일본에서 납치해 바다에 수장시키려고 했다. 유신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민청학련과 인혁당사건으로 엮어 무더기로 잡아 고문하고 사형을 집행했다. 대표적인 재야 인사였던 장준하 의문사 사건도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참고로 제2차 인혁당 사건에선 모두 8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 법학자협회는 인혁당 사형 판결이 확정된 4월8일을 "사법 사상 암흑의 날"이라고 선포했다.

경찰들이 남성들의 머리카락에 마구잡이로 가위질을 하고 여성들의 치마길이를 재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그 시대에 벌어졌던 수만 가지의 코미디 같은 사건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독재정권에 반대한 부마민중항쟁이 일어나 저항의 불길이 타오를 때 박정희는 안가에서 여성 모델과 가수를 접대부로 불러 술파티를 벌이다가 최후를 맞이한다. 이때 박정희의 최측근 차지철 경호실장은 "신민당이 됐건 학생이 됐건 탱크로 밀어 캄보디아에서처럼 200만∼300만 명만 죽이면 조용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박정희가 집권한 18년 동안의 벌어졌던 오욕의 역사를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만화로나마 읽어보기를 권한다.

/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