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600년 천년을 내다본다
   
▲ 화성 수촌교회는 일제 강점기의 항일 독립정신이 깃든 교회다. 당시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1987년 본래의 본가 형태로 다시 복원 중건했다. 이 건물 내부는 당시 교회로 사용했던 마루와 방2개, 부엌, 현관인듯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제공=화성시


3. 종교의 성지 경기도(1)


근대 개혁사상·독립운동 구심점 된 기독교 관문

이율곡·정몽주 등 성리학 거인 기리는 향교 산재

용주사 등 왕실원찰 많아 '숭유억불'속 법맥이어


종교(religion, 宗敎)는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신(神)이나 절대적인 힘을 통해 인간의 고민을 해결하고 삶의 근본 목적을 찾는 문화 체계를 말한다.

"한국의 종교 상황은 '종교백화점'이나 '종교시장' 등으로, 한국사회는 '다종교사회'로 표현된다. 한국사회에 종교단체의 수가 많고, 종교단체들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일종의 선택 가능한 상품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한국의 종교현황, 2011. 문화체육관광부>

현재 한국에는 자생 종교와 외래 종교 등을 합해 510개 이상의 교단·교파가 있다. 한국의 전체 인구 53%가 스스로 종교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종교별 인구수는 불교 1072만6463명, 개신교 861만6438명, 천주교 514만6147명, 유교 10만4575명 순이다.

행정구역별 종교인구는 경기도가 1034만1006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서울시 976만2546명, 부산 351만2547명, 경남 304만93명 순이다.

"경기도는 포교와 전도의 접점(接點)이다. 대부분 종교와 교파들이 경기도에서 힘을 얻어 전국으로 교세를 확장했다."<윤여빈 실학박물관 학예팀장>

경기도가 종교 포교의 접점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경기도에는 유독 종교 성지(聖地)가 많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 617~686)는 경기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젊은시절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허기에 지쳐 해골에 든 물을 마시고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一切唯心造)이라고 깨달은 곳이 경기도 화성이다.

또한 소요산 자재암에서 '원융회통(圓融會通)'사상을 정립시켰다. 이는 경기도가 사람과 물산(物産)이 모이고 융합하고 있는 역동의 현장으로 세계가 소통하는 허브로 만들고자 하는 문화의 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 좀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원효의 정신과 일치한다.
 

   
▲ 고려 충렬왕 때 창건된 청계사는 의왕 청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역대 큰 스님들의 원력과 신도들의 간절한 발원으로 전법불사를 시작한 이래 경기지역의 포교1번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사진제공=의왕시



천주교가 선교를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이 순교한 곳이 경기도로 우리나라 전체 천주교 성지 161개 가운데 35개가 수원교구 관할이다. 또한 개신교가 선교를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 신앙을 위해 순교한 곳이고, 신종교가 교세를 확장하고 본부를 두고 있는 곳이다.


▲유교
'당신의 종교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우리나라 사람은 대체로 1% 내외의 사람만이 유교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당신은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냅니까?' 혹은 '당신은 효와 같은 유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까?'라고 물을 때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실천적인 유교인임을 뜻한다. 유교는 한국인의 사회윤리를 결정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한국의 종교문화, 김성철>

중국 공자가 창시해 맹자·순자로 계승되어온 유교는 우리나라에서 조선의 건국이념이 되면서 꽃을 피웠다. 유교문화적인 유산은 서원과 향교다.

경기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로서 향교와 같은 교육기관이 발달해 국가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고려·조선시대 사상을 주도했던 포은 정몽주,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청음 김상헌,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순암 안정복 등이 대부분 경기지역에 거주하며 학문을 익혔다. 이어 이들의 후예들이 서원을 건립, 선현들의 위업을 계승했다.

대표 서원으로는 △파주시 법원읍에 대학자인 율곡 이이를 배향한 자운서원 △용인 수지구 상현동에 조선의 개혁가인 정암 조광조를 추모하는 심곡서원 △용인 처인구 모현면에 동방성리학의 시조인 포은 정몽주를 기리는 충렬서원 등이 있다.
 

   
▲ 한국 천주교회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잠들어 있는 안성 미리내 성지는 경기도 광주, 양평(양근), 용인, 안성, 화성, 시흥 일대와 충청도 천안 목천, 진천 배티, 동골 등 교회 초기에 우리의 신앙선조들이 교우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사진제공=안성시


이와 함께 수원시 교동에 가장 오래된 수원향교가 있고, 조선 건국 직후 건립된 여주향교는 남한강 수운(水運)문화의 발달로 많은 인재들이 모였다.

이렇게 조선의 유교는 경기도에서 심화되고 철학화됐다. 유교는 크게 성리학(주자학)과 실학으로 나눠볼 수 있다. 성리학이 우주론과 심리학을 결부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이론 종교라면, 실학은 경국제민과 실용후생의 실천종교라고 할 수 있다.


▲불교
불교는 기원전 6세기 인도의 석가모니가 개창한 이후 2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중국을 거쳐 고구려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불교가 추구하는 최고의 인간상은 깨달은 사람, 해탈(解脫)을 얻은 사람, 참된 자기를 찾은 사람이다. 석가모니는 그 스스로 신이기보다는 단지 한 인간임을 강조하고 그 자신의 노력과 지성의 결과로 인해 깨달음을 성취했다고 한다.

경기도는 불교국가인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불교가 크게 발달했다. 왕실의 국찰이 창건되어 고승대덕과 찬란한 불교조형물이 만들어졌다. 또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지만 경기지역의 사찰들은 왕실의 원찰로 지정되며 법맥을 이어왔다.

대표적인 사찰이 화성의 용주사다. 조선의 국왕 정조가 만든 국가사찰이며 사도세자의 원찰이다. 평지에 건립된 왕실원찰의 정형을 이루며, 효(孝)의 원찰이다.

여주의 신륵사 역시 조선 왕실의 원찰이었다. 남한강변의 아름다운 경관에 자리잡아 고려시대 이래 시인묵객(詩人墨客)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강변사찰이다.

양주의 회암사지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국사(國師)와 왕사(王師)가 주석하는 국찰이고 조선시대 행궁과 같은 왕찰(王刹)이었다.
의왕의 청계사는 고려 충렬왕 때 창건, 조선시대 선종의 총본산이었던 불교계의 대표사찰이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선사(鏡虛禪師, 1846~1912)의 출가지인데, 올해가 열반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천주교
조선 후기에 유입된 서학 천주교는 한국에서 자발적인 신앙운동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광암 이벽(李蘗, 1754~1786)이다.

한국천주교는 1784년 이승훈(李承薰,1756~1801)이 북경에서 영세하고 돌아와 이벽, 정약전 등과 더불어 신앙공동체를 구성함으로써 정식으로 수용됐다.

광주시 퇴촌읍에 천진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절터였으나 지금은 천주교의 성지다.

초기 가톨릭 신자였던 이벽·권철신(1736~ 1801) 등이 최초 가톨릭 교리를 강론한 곳이다. 또 여주 주어사에서 권철신과 정약전, 이벽 등이 모여 소위 주어사강학(走魚寺講學)을 열기도 했다.

최초의 천주교 교리 연구가인 이벽은 유교경전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으면서도 서학서적에 나타난 천주(天主)의 문제를 심오하게 파헤쳐 서양종교의 논리를 동양적인 사고로 승화시켰으나 32살 젊은 나이에 페스트에 걸려 세상을 뜬다.

또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 성지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첫 사제인 김대건(안드레이, 1821~1846) 신부가 16명의 순교자와 함께 25살 때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묻혀있다.

그는 형장에서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한 것은 내 종교를 위해서였고 내 하느님을 위해서였다. 나는 천주를 위해서 죽는다'고 말했으며, 당시 조선의 전통 사상, 즉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또 하나의 문명 세계인 서양의 학식을 신앙 실천을 통해 전파하려 했다.<한국 가톨릭 대사전>


▲개신교
개신교는 초기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구역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일대에 국한됐다. 1885년 북장로교회의 언더우드와 감리교회의 아펜젤러가 일본을 거쳐 제물포에 도착한 것이 최초 목사 선교사였다.

개신교는 120년의 길지 않은 역사지만, 교육과 의료를 연계한 선교를 통해 가장 큰 교세를 이루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경기도 땅에서 순교했다.

용인에 있는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에 복원해 놓은 소래교회는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 1883년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솔래에 세운 한국 최초의 자생교회다.

특히 화성에 있는 수촌교회와 제암교회는 일제 강점기 항일 독립정신이 깃든 순교의 현장이다.

수촌교회는 1905년 김응태 목사(당시 성도)가 7명을 모아 예배드린 곳이다. 3·1 운동 당시 만세 시위를 빌미로 일본군이 4월15일 새벽 예배당을 비롯해 마을을 방화했다. 그러한 탄압 속에서도 꿋꿋히 이겨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암교회는 1919년 4월15일 '만세 운동 주동자를 대라'는 일본군의 협박에 제암리 교회 성도들이 굴하지 않자 일제는 성도들을 불러 모은 후 문에 못질을 하고 불을 질러 집단학살의 만행을 저지른 곳이다. 이때 23명의 성도들이 순교했다.

수원종로교회는 1900년 선교사가 수원 화성 안에 설립한 최초의 교회이며, 수원지역뿐만 아니라 제천·음성 등 충북지역과 여주·이천 등의 경기 동부 지역까지 기독교를 전래한 본거지였다. 수원 매향중학교·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삼일중학교·삼일상업고등학교 등도 북감리회의 미션스쿨로 문을 열었다.


▲신종교
한국의 신종교는 주로 조선조 말기 근대사회에 접어들어 등장한 새로운 종교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종교는 동학(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대종교 등이다.

앞선 전통인 민간신앙·무속·유교·불교·도교를 바탕으로 생겨났지만 단순히 그 종교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의 교리를 만들어 냈다. 이들 신종교 역시 경기도에서 크게 교세를 떨치고 있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분단의 땅이지만 경기도는 곳곳이 기도처다. 종교와 나라, 평화를 위해서 순교의 피를 흘린 신앙이 꽃피는 곳이다. 그래서 경기도는 평화의 땅이다. 성프란치스코의 기도-평화의 기도-처럼, 종교가 지향하는 것은 평화이기 때문이다.

/글 이동화·사진 김철빈기자 itimes21@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