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다 평소 자식의 사상교양상태를 수시로 점검하면서 돌발사태에 대응하지 못한 어머니로서의 도덕적 과오를 형식적으로라도 당 세포들 앞에서 반성하며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민반장의 설명을 듣고 보니 뒤늦게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었다. 이 위기를 어떻게 풀어야 좋을까?

 정남숙은 이제 물러설 자리도 없이 벼랑의 끝까지 밀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오늘은 직장에서도 힘든 하루였는데 생활총화시간에도 몰매를 맞듯 이웃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당해야 하는 날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리순호 동무를 바라보았다.

 리순호 동무는 10년이 넘게 쌓아온 전직 안전부장 부인과의 인간적 관계를 끊으면서 제일 먼저 호상비판을 해야 된다는 것이 괴로웠다. 그러나 당 세포비서가 집에까지 찾아와 『이번 기회에 당을 위해 큰 일을 한번 해 달라』고 요청한 바가 있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사실 엊그제까지 안전부장 부인으로 떠받들던 정남숙을 비판하려니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내적 갈등을 짓누르듯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해대다 용기를 내어 당 세포들을 바라보았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습네다. 「대를 이어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워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공화국 혁명가정 세대주와 어머니들이 평소 자식들의 사상교양사업에 앞장서야 합니다. 또 사상교양사업을 더욱 알차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어머니들이 조직생활에 자각적으로 참가하여 사업과 생활을 정규화, 규범화 하야야 되겠습니다. 당에서 인민들을 불러놓고 아무리 사상교양을 하여도 공화국 혁명가정의 세대주와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들의 생활을 점검하고 다독거리면서 줄기차게 사상교양사업을 해나가지 않으면 그 자식들은 쉴새없이 밀려오는 외세와 수정주의 사상에 물들어 정신적으로 타락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 공화국 어머니들은 원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앞날과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혁명의 후비대로 자라나고 있는 우리 자식들의 사상교양상태를 하루하루 점검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점이 나타나면 허심탄회하게 이웃과 비판의 방법으로 사상투쟁을 벌이고, 또 사상투쟁을 통하여 혁명적으로 단련하고 끊임없이 개조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방금 제가 낭독해 드린 내용은 김일성 저작선집 4권 제○판 51페지에 기록되어 있는 수령님의 교시를 인용했다는 것을 먼저 여러 세포 동지들께 밝혀 드립네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이처럼 자상하게 우리 자식들의 사상교양사업 방향을 제시해 주셨는데도 정남숙 동무는 조금 전 자아비판을 통하여 자기 자식이 조국과 인민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났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