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차드 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지난 11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에도 여러 증언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다 감안해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했다.

내 방식대로 박 후보의 말을 쉽게 풀어보자면 이런 얘기일 것이다.

5·16군사쿠데타라는 합법(?) 수단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국회를 정당(?)하게 해산하고 유신헌법을 선포했는데, 이를 반대하는 자들이 있어 법에 따라 8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하고 15명에 대해선 퍽 관대한 형량인 징역 15년에서 무기징역을 처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도 하에 정당하게 처리된 '인혁당 사건'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2007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왔는데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우선 박 후보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자면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에도 여러 증언"을 하고 있다는 사건은 법원이 재심으로 무죄 판결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아니다. 또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라며 마치 두 개의 판결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두 개일 수 있는가?

어쨌든 나는 박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의 뜻을 세심하게 헤아리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오늘은 전 국민 87%의 지지를 받으며 8년간의 임기를 마친 대통령에 관한 책을 한 권 권한다. 바로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의 삶과 정치 인생을 소개하고 있는 <대통령의 길 룰라>(리차드 본·글로연)란 책이다.

룰라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선반공 출신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환호하고 부자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세계적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브라질이 아르헨티나처럼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란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룰라는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고자 했으며, 반대자들과 얘기하며 타협하고자 했던 소통하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좌파라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좌우를 넘나들며 성장과 분배 정책을 아우르며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펴 브라질 국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룰라 정부 집권 8년 동안 경제는 브라질이 이전 20년간 기록한 평균 GDP의 두 배를 넘어섰다. 룰라 정부는 특히 소득분배에 공을 들였는데 룰라 임기 동안 무려 2000만여명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경제도 눈부시게 성장했다. 2002년 GDP의 32.7%를 차지했던 순외채 규모도 2009년엔 -3.8%로 떨어져, 브라질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룰라 정부의 이 같은 경이적인 성공의 단초가 된 핵심 정책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룰라가 추진한 '기아 제로'와 '보우사 파밀리아'라는 사회포용 정책이다. 쉽게 말하자면 최소한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정책이다. 소득이 최저생계비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가정에게 정부가 그 부족분을 현금으로 보전해주는 정책이다. 그러자 비판자들은 룰라의 서민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룰라는 사회포용 정책으로 8년의 임기동안 빈곤층의 30% 가량을 가난이라는 수렁에서 건져냈다. 1140만 여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실질 임금도 20.7% 올랐다. 룰라 정부의 소득보전프로그램은 오늘날 브라질 전체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6800만여명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소득보전정책으로 소비가 늘어나 국내시장이 크게 확대되었고 지역경제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바로 분배가 경제성장의 열쇠였던 것이다.

나는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는 개나 소나 다 떠들어대는 '경제살리기'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국민이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소득분배'와 '경제민주화'라고 본다. 과연 이번 대선에서 룰라와 같은 정책을 지닌 대통령 후보가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조혁신기자 mrpen68@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