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600년 천년을 내다본다
   
▲ 안산구경 제3경 대부해솔길


2. 경기경관 이야기 (1)



우주 이치 담은 주역사상 녹아 있는 '팔경'

수려한 경관 속에 선조들 역사·문화 결집

옛 시인묵객 작품 소재 … 현대인의 휴양지


경관(landscape, 景觀)은 눈으로 보았을 때 조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을 뜻한다. 산천과 식생의 자연적 요소와 인간이 건축한 인공적 요소로 나뉜다.

경관은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개성을 가지고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현대에는 자연적 경관을 넘어서 도시경관에 대한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

이백은 '정야사(靜夜思)'에서 '머리 들어 밝은 달을 쳐다보고(擧頭望山月), 고개숙여 고향을 생각한다(低頭思故鄕)'고 했다.

이처럼 경관은 사람이 안이비설신(眼耳卑舌身)을 통해 희로애락이 펼쳐지는 그런 곳이 아닐까?

경기도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하다. 아름다운 산수는 큰 인물을 낳고, 학문과 음악, 풍류를 만든다. 시인묵객들이 경기도의 산하를 시와 그림, 노래로 표현했다.

윤여빈 실학박물관 학예팀장은 "경관은 우리 생명의 근원이며, 행복한 미래를 담보하는 희망이며, 삶을 유지해 주는 경제이다. 도내 수 많은 경관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역사·자연·인문적 배경이 고루 배어있다"고 했다.
 

   
▲ 가평팔경 제5경 적목용소


경기도 경관은 오랜 역사문화 유적과 함께 해 온 만큼 역동성을 갖고 있다. 600년 역사문화 경관은 파괴의 역사였다. 수탈과 변용, 난개발과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나마 힘겹게 보존돼 왔다. 그러나 경관에는 우리의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피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이제 전통적 삶의 터전과 현재 환경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경기도 곳곳의 새로운 역사문화관광 명소화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경관을 어떻게 가꾸어 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이다.


▲왜 팔경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수가 수려한 곳이면 '00팔경' '00구곡'이라고 부른다. 경기 도내에 있는 옛 팔경이 으뜸이었다.

화적연·금수정·창옥병 등의 포천 영평팔경과 여강·청심루·나룻배·연촌·벽절·마암·영릉·팔대수의 여주 금사팔경 등은 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또 석실조욱·두미제월 등의 남양주 미호팔경과 비룡채운·운수모연·비금계곡의 남양주 수동팔경 등도 그렇다.

그런데 관동팔경, 송도팔경, 신도팔경, 단양팔경처럼 왜 꼭 '경(景)'을 '팔경(八景)'으로 한정하고 '팔(八)'이라는 숫자를 택했을까?

"동양의 수치는 단순히 자연수를 셈하는 단위가 아니라 삼라만상의 대응과 조화의 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는 '하늘은 칠이요, 땅은 팔이다(天七地八)'라고 했으며, 관자(管子) 오행(五行)에서는 '지리이팔제(地理以八制)'라고 했다. '팔경'의 '팔'이라는 수는 땅을 의미하는 동시에 땅의 속성을 함께 드러내는 수다."<소상팔경 한시의 함의와 정서적 기여, 전경원>

이처럼 팔경은 주역에서 말하는 우주의 현상과 자연의 이치를 나타내는 기본 원리를 담은 숫자인 팔을 자연에 적용한 것이며, 구곡(九曲) 역시 주역의 양효(陽爻)가 제5위에 있는 구오(九五)의 원리에 따라 설정했다고 한다.

팔경은 수려하고 특징있는 경관을 명료하게 나타내 보인 전통적인 표현방식이고, 경관은 단순히 공간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문화가 결집되고 삶이 더해져서 형성된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옛 선인의 정신이 깃든 팔경시와 팔경
'비옥하고 풍요로운 기전천리/안팎의 산과 물은 백이로구나/덕교에다 형세마저 겸하였으니/천년 왕조의 기틀을 세우도다'
 

   
▲ 포천 영평팔경 제3경 창옥병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의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의 '경기의 산하(畿甸山河)'이다. 그는 경기지역은 풍요롭고, 또 안팎으로 산과 물이 둘러져 있어 견고하므로 천 세기를 기약할 수 있는 땅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옛 사람들은 주변의 수려하고 특징있는 경관을 팔경으로 설정하고, 이를 팔경시라는 형태를 빌려 경관을 기록하고 표현했다.

자연산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가치가 있고 즐길만 한데, 거기에 한시(漢詩)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던 것이다.

팔경과 구곡, 팔경시는 자연산수에 철학적 사유를 더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한 옛 선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물론 오늘날도 우리는 몸이 아프고, 마음을 다잡으려면 산과 강, 바다 등 경치좋은 곳으로 관광을 떠난다. 관광의 어원은 주역의 '관국지광이용빈우왕(觀國之光利用賓于王)'에서 유래했으며, '과행(科行)'이라는 뜻도 있다.'관광간다'는 '과거보러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때문에 율곡 이이는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를, 퇴계 이황은 성학10도(聖學10圖)를 통해 자연경관뿐 아니라 마음의 경관까지도 닦도록 한 것은 아닐까?

이제 팔경은 관광자원으로 구실하고 관광과 휴양의 거처로 작용하고 있다. 또 팔경제도는 도시경관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인물을 낳고 키우는 경관
경기 경관은 뭇 인물을 낳고 키웠으며, 시인묵객들의 작품 소재였다.

맹자는 "득지(得志)하면 여민유지(與民由之)하고, 부득지(不得志)하면 독행기도(獨行其道)"라고 했다.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나홀로 수신의 도를 지킨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나 일에서 물러나 자연과 더불어 인생을 즐긴다는 도법자연(道法自然,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의 인생관이 깃들어 있다. 이는 안빈낙도와는 다른 차원이다.

이런한 도법자연의 터전이 경기도다. 많은 역사 인물들이 천혜의 경관속에서 학문을 닦고,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정치를 꿈꾸고,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했다.

조선 후기 학자 서계 박세당(朴世堂)은 당쟁에 혐오를 느껴 관직을 포기하고 수락산 아래 의정부 장암으로 온다.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학문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쓴다.

조선 후기 문신 잠곡 김육(金堉)은 가평 호명산 잠곡에 은거하면서 성균관에서 공부한 내공을 닦고 백성들의 삶에 들어가서 새로운 정치를 꿈꾼다.

조선의 명신 백사 이항복(李恒福)은 '가평군 호암동에서 짓다(加平郡虎巖洞)'에서 운악산 호랑이 골짜기의 기이한 괴석과 우거진 숲을 바라보며 풍진 속에서 반평생을 허덕이며 보낸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고려 말 고승 나옹선사는 스스로를 강월헌(江月軒)이라 부르고 아름다운 여주팔경, 신륵사 옆 여강(麗江)에 비친 달을 보고 진리를 깨달아 득도했다. 역시 고려말 학자인 이색(李穡)도 나옹과 함께 이곳에서 정담을 나누며 말년을 보낸다. 이색은 '한 조각 강과 산은 옥인의 솜씨같다(一片江山似玉人)'고 여주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또 여주는 조선 초기 최숙정(崔淑精)의 이포나루 시(詩)를 비롯해 명현석학이 찬탄한 금사팔경이 말해주듯 절묘한 산하의 형승을 이룬 곳이다.

조선 초 청백리 율정 박서생(朴瑞生)은 넓고 기름진 땅 평택을 "물 좋고 산 낮으며 기름진 넓은 들판/주민들은 곳곳에 밭갈이를 일삼는다"고 노래했다. 이 같은 평택의 넓은 들을 보고 민세 안재홍(安在鴻)은 독립의 염원과 신민주주의 기상을 품었다.

파주의 자운산과 임진강을 배경으로 방촌 황희,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구암 허준 등이 백성을 생각하며 학문을 성취했다.

조선 후기 한문 4대가로 일컬어지는 청장관 이덕무(李德懋)는 파주 화석정에서 임진강을 건너며 '거나하게 술마시고 부러 더디 노를 저어'라고 화석정의 풍광을 노래했다.

조선 중기 문인 사암 박순(朴淳)은 14년간 영의정을 지냈으나 극심한 동서당쟁 속에서 이이·성혼을 편들다가 서인으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고 포천 영평의 백운산에 은거하며 영평팔경을 벗삼아 지내며 살았다. 옥병서원(玉屛書院) 앞 영평천변 절벽에 있는 그의 시 '題二養亭壁'이다.

"이따금 들려오는 외마디 산새소리/谷鳥時時聞一箇
책상머리 적적한데 서책들만 널려 있네/匡床寂寂散群書
가련타 백학대 앞 흐르는 저 시냇물/每憐白鶴臺前水
산문을 겨우 나서 흙탕물 될 것이니/出山門便帶"

이는 산간에 살며 세상의 모든 일과 이제 인연을 끊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포천의 수려한 경관이 있었기에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이며, 국민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를 지은 봉래 양사언(楊士彦)이 글과 글씨의 경지에 올랐으며, 근대문학의 선구자 동농 이해조(李海朝)가 문학을 완성하고, 위정척사 의병장 면암 최익현(崔益鉉)이 독립의 비원과 자주국가의 기개를 펼칠 수 있었다.

이처럼 경기 경관은 많은 시인묵객들이 삶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꿈을 키워나가는 터전이었다. 여기에 장자(壯子)사상의 소요유(逍搖遊, 마음가는대로 유유자적하며 노닐 듯 살아감)의 기본철학이 있다.

누구나 경관 앞에서는 생명을 경외하는 마음이 우러나오고 빈부귀천이 없고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경기도 경관을 지키고 살려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글 이동화·사진 김철빈기자 itimes21@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