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평양에 있는 동생이 전화를 할 때마다 몸가짐에 신중을 기하고 가슴속에 든 감정조차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부탁 때문에 곽병룡 상좌는 어금니를 깨물고 행정경제위원회(군청) 노동과에서 해야 할 일들을 조용히 마쳤다. 그리고는 낙원군 군사동원부로 들어가 인구와 인영이의 군사훈련 관계 문건을 정리한 뒤 다시 자신이 복무했던 낙원군 사회안전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제 가족들의 식량배급정지증명서를 신청해야 하는 것이다. 귀찮다고 이런 문건들을 챙기지 않으면 새로 옮겨가는 신풍서군 목재가구공장에서 다시 식량을 배급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이동절차 때문에 공화국에서는 인민들이 당국의 허락 없이 개인들 마음대로 직장을 옮기거나 거주지를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곽병룡 상좌는 노모와 외지에 자식들까지 유학시키고 있는 세대주라 평양과 낙원군과 새로 옮겨가야 할 신풍서군 목재가구공장 지배인과의 3자 대조가 끝나야만 낙원군 사회안전부 식량배급정지증명서 발급 담당자가 15일간 식량배급이 정지되게끔 증명서를 떼어주는 것이다.

 그는 이 일을 금일 중으로 마쳐 놓으라는 평양 동생의 전갈을 받고 바삐 낙원군 사회안전부 경리과가 있는 신관 아래층 복도를 걸어갔다. 시계는 벌써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일과가 끝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담당자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곽병룡 상좌는 식량배급정지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담당자가 자리에 없으면 낭패라는 생각이 들어 조바심에 찬 얼굴로 감찰과(수사과) 앞을 지나갔다.

 『부장 동지?』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곽병룡 상좌는 서류봉투를 든 채 뒤돌아보았다. 생각지도 않던 백창도 감찰과장(수사과장)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부장동지, 여기 웬 일이십네까?』

 백창도 과장이 급히 다가와 두 손을 내밀었다. 곽병룡 상좌는 반가운 빛을 보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

 『식량배급정지증명서를 떼어야 할 일이 있어 경리과에 가는 길일세.』

 『아니, 기런 걸 왜 부장동지께서…운전수 동무한테라도 챙겨 달래지 않고서리…?』

 백창도 감찰과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곽병룡 상좌를 바라봤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평안북도 낙원군 내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력을 거머쥐고 있던 부장 동지가 서류봉투를 들고 다니며 직장이동에 필요한 증명서를 직접 떼고 있는 사실이 딱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동무가 김중좌와 같이 어데 급히 갔다올 일이 생겨서 길케 되었네.』

 곽병룡 상좌는 떠나갈 마당에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뭣해 어색하게 씩 웃고 말았다. 그러나 백창도 과장은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최고 수장으로 모셨던 안전부장 동지를 이런 식으로 떠나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곽병룡 상좌의 손을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