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비판 형식은 거의가 비슷했다. 모두들 자신의 앉은자리에서 한 사람씩 일어나 제일 먼저 수령의 교시를 인용했고, 그 다음은 한 주간 중에 있었던 자신의 주요 결함사항을 제시했다. 세번째는 결함의 원인에 대한 자체분석과 시정을 위한 자신의 의지(또는 결의)를 표명하면서 자기비판을 마쳤다.
세포들은 자아비판이 끝나자 허리가 아프고 삭신이 결려 못 견디겠다며 다리를 펴 주물러 댔다. 그러다간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좀 쉬었다가 하자면서 생활총화를 주관하고 있는 세포비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세포 비서는 인정 사정없이 세포들의 요구를 묵살하면서 바로 호상(상호)비판으로 들어갔다.
『아, 아, 시끄럽게 떠들지들 말고 모두들 내 말 좀 들어보라요. 이미 알고 있는 동무들도 많갔지만 오늘은 정남숙 동무의 맏아들이 조국과 인민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난 사건으로 인해 새별고등중학교에서 사상투쟁이 벌어졌고, 또 그로 인해 상급 당 조직에서도 우리 인민반 소속 당 세포들의 사상교양사업을 다시 점검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내래 동무들 사정을 일일이 들어줄 수 없는 립장입네다. 기러니까니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오늘만은 내 말을 좀 들어주시라요. 나도 동무들처럼 힘들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만 어쩔 수가 없습네다. 기럼 모두들 내 심정을 료해해 주리라 믿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해 주신 생활총화의 순서에 따라 호상비판에 들어가갔습네다. 자기비판 순서대로 리순호 동무부터 먼저 일어나서 비판해 보라요.』
세포비서가 눈을 끔뻑하자 리순호 동무는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맞잡아 쥐면서 낙원군 사회안전부 최고 권력자의 부인이었던 정남숙의 표정부터 살폈다. 그때 정남숙은 당 세포 비서의 입에서 자신의 맏아들이 조국과 인민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났다는 말이 나오고, 또 그런 사건으로 인해 자기 딸이 다니고 있는 새별고등중학교에서 사상투쟁까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낙원군 인민병원 수술실에서 충수염(맹장염) 환자의 아랫배를 찢어 충양 돌기를 도려내고 있었던 낮 시간에 사회안전부 아파트단지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선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조금 전 자아비판 순서 때 인구가 남조선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당 세포들 앞에서 이실직고하지 않고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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