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내용은 세포마다 달랐다. 시댁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여행증도 준비하지 않고 시댁으로 달려가다 열차에서 안전원한테 들켜 과중한 벌금을 물었다든가, 이번 주 아파트단지 위생사업(청소) 때는 직장 일에 지쳐 늦잠을 자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소홀하게 되었다든가, 딸의 앞날이 걱정되어 지난주에는 딸아이의 담임교원을 찾아가 뒷방치기사업을 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보니 그것이 개인 이기주의에 빠진 분별 없는 생활이었다고 반성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비판 형식은 거의가 비슷했다. 모두들 자신의 앉은자리에서 한 사람씩 일어나 제일 먼저 수령의 교시를 인용했고, 그 다음은 한 주간 중에 있었던 자신의 주요 결함사항을 제시했다. 세번째는 결함의 원인에 대한 자체분석과 시정을 위한 자신의 의지(또는 결의)를 표명하면서 자기비판을 마쳤다.

 세포들은 자아비판이 끝나자 허리가 아프고 삭신이 결려 못 견디겠다며 다리를 펴 주물러 댔다. 그러다간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좀 쉬었다가 하자면서 생활총화를 주관하고 있는 세포비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세포 비서는 인정 사정없이 세포들의 요구를 묵살하면서 바로 호상(상호)비판으로 들어갔다.

 『아, 아, 시끄럽게 떠들지들 말고 모두들 내 말 좀 들어보라요. 이미 알고 있는 동무들도 많갔지만 오늘은 정남숙 동무의 맏아들이 조국과 인민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난 사건으로 인해 새별고등중학교에서 사상투쟁이 벌어졌고, 또 그로 인해 상급 당 조직에서도 우리 인민반 소속 당 세포들의 사상교양사업을 다시 점검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내래 동무들 사정을 일일이 들어줄 수 없는 립장입네다. 기러니까니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오늘만은 내 말을 좀 들어주시라요. 나도 동무들처럼 힘들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만 어쩔 수가 없습네다. 기럼 모두들 내 심정을 료해해 주리라 믿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해 주신 생활총화의 순서에 따라 호상비판에 들어가갔습네다. 자기비판 순서대로 리순호 동무부터 먼저 일어나서 비판해 보라요.』

 세포비서가 눈을 끔뻑하자 리순호 동무는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맞잡아 쥐면서 낙원군 사회안전부 최고 권력자의 부인이었던 정남숙의 표정부터 살폈다. 그때 정남숙은 당 세포 비서의 입에서 자신의 맏아들이 조국과 인민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났다는 말이 나오고, 또 그런 사건으로 인해 자기 딸이 다니고 있는 새별고등중학교에서 사상투쟁까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낙원군 인민병원 수술실에서 충수염(맹장염) 환자의 아랫배를 찢어 충양 돌기를 도려내고 있었던 낮 시간에 사회안전부 아파트단지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선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조금 전 자아비판 순서 때 인구가 남조선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당 세포들 앞에서 이실직고하지 않고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