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더부룩하게 기른 고등중학생이 선배를 끌어당겼다. 꽃제비들은 아우들의 후방사업(먹고 노는데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는 일) 수완을 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때 역전으로 나가는 버스가 왔다. 인영은 그들이 쑥덕거리는 말을 엿듣다가 제일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길바닥이 떠나가도록 웃어제끼며 소란을 피워대던 꽃제비 두 명과 고등중학생 두 명도 뒤늦게 버스에 올라타며 문 앞으로 몰려가 섰다.

 인영은 시내버스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으며 그들이 은밀하게 주고받던 말들을 되씹어보았다. 그들은 분명히 자신과 같은 시대 공화국 땅에서 태어나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신세대들인데도 인영은 그들이 주고받던 말 중 절반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빠라(조직)·악지가리(주둥이)·똑딱이(시계)·창통(경찰)·뚜룩(집)·농끼(촌놈)·땡줄서리(버스 정류장 소매치기)·한 콜 까시러(밥 먹으로)·씽(돈)·하꼬놀이(열차 소매치기)·깍대기(지갑)·야생 쳤더니(노숙을 했더니)·깡타이(강냉이밥)·꼴방들기(헛탕치기)·빠글(담배)이 대체 무슨 뜻일까?

 조선말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들의 은어와 속어를 되씹어보다 인영은 그만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무언가 음모를 꾸미러 가는 것 같은데 주고받는 은어와 속어를 몰라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쟤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저렇게 속살거려댈까? 인영은 바깥을 내다보며 또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때, 곽병룡 상좌는 낙원군 사회안전부로 들어가 전 가족이 신풍서군으로 옮겨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직장에 다니던 사람이 상부지시나 조동명령(조직적인 이동명령)을 받고 거주지와 직장을 옮겨야 할 경우는 직장의 초급 당비서나 지배인에게 조동명령을 받은 사실을 알리고, 직장의 최고책임자로부터 옮겨가도 좋다는 동의서가 발부되어야만 거주지 시·군 노동과에 가서 노동수첩에 도장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20여 년 전 평양에서 도 안전국으로 조동되어 올 때는 아랫사람들이 그런 사무절차를 다 밟아주어서 그는 몸만 오면 되었는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당 총회에서 당원권리정지처분을 받은 사실이 도 안전국과 낙원군 사회안전부 내에 알려지고, 새로 옮겨가는 직장도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고원지대 벽촌에 있는 데다 직위도 강등되어 목재가구공장 안전주재원으로 조동된다는 사실이 공표되자 어느 누가 나서서 직장이동과 거주지 변경에 대한 사무절차를 대신 밟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 발로 뛰어다니며 혼자 해결해야 되었다.

 십수 년 이상씩 동고동락하며 함께 복무한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순식간에 변해버릴 수가 있을까?

 낙원군 행정경제위원회(군청) 노동과로 들어가 안해 정남숙과 자식들의 노동수첩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 터벅터벅 길을 걷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