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르디 시에라 이 화브라

구멍에 빠진 기분이다. 뚜껑이 없는 맨홀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길 위에 갑작스레 나타난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구멍 속에 빠져든 느낌. 다행히 몸이 반쯤 빠진 채다. 구멍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아니, 세상에 내던져졌을 때부터 구멍에 빠져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란 말인가?

여행 중에 짬을 내어 틈틈이 책을 읽었다. 그 중에 스페인 동화 작가 조르디 시에라 이 화브라의 장편소설 <구멍에 빠진 아이>(도서출판 다림)를 손에 잡고 열대의 더위를 피해 그늘 아래에 드러누워 책을 읽었다.
열 살짜리 꼬마 소년 마르크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상반신만 바깥에 둔 채로 구멍 속에 빠져버린다.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지만 구멍은 점점 몸을 조여 온다. 빠져나올 수 없다.

소년 마르크가 구멍에 빠진 이유는 인생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겨우 열 살짜리 꼬맹이가 인생이 뭐가 복잡하냐싶지만 어린 아이에게도 복잡한 인생살이가 있는 법이다. 마르크는 엄마 아빠가 별거 중이다. 부모의 별거만큼 아이에게 머리 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 마르크는 평일에는 엄마와 함께 살고 주말을 맞아 아빠 집으로 가는 길에 구멍에 빠진 것이다.

마르크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다.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경찰은 마르크를 불량소년 취급을 해버린다. 길을 지나가던 신부, 군인, 여행객, 기자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모두 마르크의 얘기는 들어줄 생각도 안 하고 잔뜩 자기 얘기만 늘어놓고 가 버린다. 특히 기자는 소년 마르크를 좌파로 단정 짓고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를 한다.

소년 마르크는 고독감을 느낀다. 배는 고파오고 갈증이 난다. 어둠이 밀려오자 공포감마저 든다. 그 때 구멍 속에 틀어박힌 마르크 앞에 말을 하는 떠돌이 개 라피도가 나타난다. 마르크는 떠돌이 개 라피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라피도는 마르크 이야기를 들어 주며, 자신도 길에서 살면서 얻은 세상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마르크는 라피도와 친구가 된다.

개? 말하는 개? 개와 말할 수 있고 서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이 척박한 세상에서 그나마 큰 위안거리다. 인간의 세계에서 인간은 소통과 공감을 나누기는커녕 서로에게 증오의 총부리를 겨누지 않는가.
떠돌이 개 라피도는 마르크에게 말한다.

"비슷한 사람들 끼리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이야. 서로가 상대방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게 인간들의 문제야. 인간들은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어. 길거리의 내 친구들, 특히 버려진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비록 개일망정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 구멍에서 빠져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를 붙들고 밑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끌어당기는 이 구멍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다시 소설로 돌아가자. 밤이 저물어 갈 무렵, 지친 마르크 앞에 또 한 명의 친구가 나타난다. 그는 집도 가족도 없는 거지다. 마르크는 거지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게다가 거지는 전에 구멍에 빠진 적이 있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거지는 마르크보다 먼저 구멍에 빠져 고통을 겪은 선배다. 그런데 거지는 마르크를 도와줄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구멍의 정체가 드러난다. 떠돌이 거지는 말한다.

"구멍은 네가 지고 온 거야. 네 영혼에 붙어서. 생각을 해, 얘야. 생각을. 지금 네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도움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을 이기는 거야."

그렇다. 혼자 힘으로만 구멍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동화의 결론이란 항상 이런 식이다. 공자님 말씀 같은 교훈. 그런데 동화는 가슴 깊이 와 닿는 힘이 있다.

<구멍에 빠진 아이>는 냉혹한 세상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소외된 떠돌이들, 사회적 약자들의 따뜻한 입김이 있다. 구멍에 빠진 소년 마르크를 유일하게 위로하고 도와주는 존재들도 바로 떠돌이, 사회적 약자이다. 떠돌이 개 라피도와 거지 아저씨 … . 자, 소년 마르크는 과연 구멍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조혁신기자 chohs@itiem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