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의 코와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시키기 위해 안전원은 군 인민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구급차부터 먼저 오라고 했다. 그러나 구급차는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인영은 그때까지 역전 분주소 나무의자에 누운 채로 피를 흘려대다 밤 아홉 시가 가까워서야 낙원군 인민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군 인민병원 구급실 총직의사(당직의사)는 피투성이가 된 인영의 얼굴을 소독붕대(거즈)로 말끔히 닦아낸 뒤 신체각부를 면밀하게 진찰했다. 누군가가 구둣발로 가슴팍을 짓밟았는지 왼쪽 갈비뼈가 세 대나 부러져 있었고, 코뼈와 앞니가 무너져 내리면서 많은 피를 흘려 수혈이 시급했다.

 『이 학생, 빨리 혈액부터 알아보라요.』

 총직의사가 지시를 내리자 간호원이 인영의 피를 채혈해 검사실로 들어갔다.

 『A형입네다.』

 『틀림없소?』

 『네. 틀림없습네다.』

 구급실 총직의사는 거듭 인영의 혈액형을 확인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병원을 지키던 의사들은 이미 다 퇴근해버린 시각이었고, 수혈실에는 응급환자에게 수혈할 피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총직의사는 만신창이가 된 인영의 코뼈와 잇몸, 그리고 부러진 갈비뼈 부위의 화농을 막을 페니실린을 주사해 놓고는 갈등에 싸인 얼굴로 왔다갔다 했다.

 환자의 피가 A형이라 B형인 자신의 피는 수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일 아침까지 응급환자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환자의 영양상태가 좋고 손발이 고운 점으로 보아 고위층의 자제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응급환자를 수혈할 피가 없다는 이유로 그냥 방치하다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는 의사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총직의사가 되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환자의 생명을 내일 아침 상급의사들이 출근할 때까지 유지시킬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 끝내는 간호장(수간호사)을 불렀다.

 『수혈이 급한데 어떡하면 좋겠소?』

 간호장은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행려환자한테까지 피를 빼주어야 되느냐고 투덜거려대다 도리 없는 듯 간호원을 제쳐놓고 자기부터 먼저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얼마나 뽑을 거야요?』

 간호원이 채혈준비를 해와서 물었다.

 간호장이 손바닥을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200cc만 뽑아주라고 했다. 간호원은 인영에게 간호장의 피가 수혈되도록 주사바늘을 꽂아놓고는 포오,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응급환자에게 간호원의 피를 뽑아 대처하는 공화국 병원들의 관행이 싫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공화국은 수혈실이 비어 있을 때를 대비해 어느 환자에게나 수혈이 가능한 O형의 여성들만 간호원으로 뽑았다. 그래서 간호원은 혈액형이 맞지 않아 자신은 피를 뽑지 못하겠다는 소리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