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반납한다 - 최유정·안치용

꺾어진 나이에 청춘에 관한 책을 읽었다. 후반기 인생을 준비해야할 나이에 청춘이라니 … 이런 걸 나잇값을 못한다고 하는 걸까? 그런데 뭐,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노랫말도 있듯이 나는 지금도 청춘을 그리워하며 또 한편으로는 뱃살이 늘어지고 눈동자가 흐리멍덩해진 중년의 몸이지만 영혼은 '새빨간'(이 색깔도 마음에 들지만 이를 금기시하는 '유체이탈'의 반공주의자들이 워낙 드세서)이 아닌 새파란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청춘을 반납한다>(최유정, 안치용·인물과사상사)는 20대 인터뷰어 최유정과 <경향신문> 기자인 40대 안치용이 만나 청년 열 명을 상대로 청춘의 현실과 청년 문제에 관해 질문하고 이야기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들 인터뷰어들이 만난 청춘들은 유령 노동자, '덕후'(=狂·마니아), 고교 자퇴생, 대학 중퇴생, 인디밴드 드러머, 비운동권 조직가, '프리터'(파트타임 생활유지자) 등이다.

사실 이들이 만난 청춘들은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보는 청춘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흔한 청춘 혹은 일반적인 청춘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스펙을 쌓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청춘이 아니다. 이들은 모순투성이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날달걀로 바위를 치는 청춘들이다. 이들은 기존의 사회가 만들어놓은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들만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사실 이들은 '청년', '청춘'이라는 타이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다. 유령 노동자, 덕후, 고교 자퇴생, 대학 중퇴생, 인디밴드 드러머, 비운동권 조직가, 프리터, 국보법 위반자(?) 등.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 대신 쉬엄쉬엄 살기를 택하고, 서로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피켓과 촛불을 든다. 그리고 새로운 제도와 이상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인터뷰이 중 소녀 '공기'는 청춘 비즈니스의 한계를 지적하며 파격적인 대답을 들려주고, '김도원'은 20대 대학생의 현 주소를 알려준다. '박현진'은 장애인에게 청년 문제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일깨우고, 세계 최초로 '덕후위원회'를 만든 '김슷캇'은 사회에서 배제된 덕후나 특수 고용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기성 조직 운동권을 비판하고 현실을 고발하는 이외에 이 책에는 나름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조병훈'은 '기본소득 운동'을, 마지막 인터뷰이인 '프리스티'는 '청년 공간 확보'라는 의미 있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10대 소녀이자 시위꾼인 공기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을 봤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아파야 돼?'였어요. 아파야만 청춘이라면, 아파도 괜찮대도 난 그런 청춘이기 싫어요. 왜 이런 상황을 청춘으로 규정하는지 모르겠어요. 포장하는 느낌이 드는 거죠. '너희는 청춘이니까 조금 힘들어도 되는 거야' 식의 설정이나 이야기들이 짜증났어요. 이런 것들을 청춘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난 이런 청춘이 싫고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일갈한다.

새로운 좌파 공동체를 추구하는 조병훈은 "유동 인구가 많고 물가 싼 노량진을 좌파들이 장악해가지고 클럽을 만들어서 놀자!"고 제안한다. 그는 "장사가 시원찮아 보이는 고시원을 값싸게 한 층 정도 확보해서 배낭 여행객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해 태국의 카오산로드와 네팔의 카트만두 타멜 거리처럼 세계적인 여행자 거리로 만들자"며 자유로운 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아이디어를 꺼내놓는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청춘들이야말로 진정한 청춘이라 생각한다. 요즘 청춘들은 겉모습은 밝고 화려하지만 영혼은 지나치게 조로해졌다. 오로지 취업과 부귀를 좇기 위해 스펙을 쌓는 청춘들에게서 우리 사회가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돈과 시간을 투자해 쌓은 스펙은 오로지 국가나 대자본이 만든 매뉴얼에서나 통한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미래의 시간은 무궁하지 않은가? 청춘들의 외침은 중년과 노년의 '노땅'들에게도 해당된다.

리얼 청춘들은 "모두에게 기본소득!", "땅값을 똥값 만들어라!", "공교육 5대 중점 과제를 문학, 철학, 예술, 농업, 체육으로 삼아라!", "연인들에게 모텔 말고 집을 줘라!", "우리 인생 대신 재벌을 해체하라!"고 외친다. 이 말이 우습다고 여겨지면 당신은 나이를 떠나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리라.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