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카면 누나는 평양으로 나가 공부하는 것을 벌써 포기했다는 말이야?』

 인영은 흥분한 얼굴로 인숙을 쳐다봤다.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오빠의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작은아버지 말씀대로 가족과 함께 행동하면서 기다려 봐야지 아무 힘도 없는 내가 뭘 어떻게 하니?』

 『큰할아버지나 작은할아버지한테라도 찾아가서 도와 달라고 매달려 봐야지 아무런 노력도 않고 그냥 집에서 이렇게 죽치고 있으면 어떻게 해?』

 그 생각은 미처 못했다면서 인숙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들어오면 한번 의논해보자고 했다. 그렇지만 인영은 누나의 그런 태평스러운 자세가 답답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집에 들어와서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주면 다행인데 만약 안 된다고 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이다. 그때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신풍서군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인영은 그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누나한테 드러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그는 아버지 어머니가 자신의 의견을 안 들어주었을 때를 대비해 억지라도 부리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아버지 어머니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영의 생각으로는 현재 그가 기대어 볼 수 있는 사람은 평양에 계신 큰할아버지나 작은할아버지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가지 말라고 해도 그가 직접 찾아가서 울부짖으며 『할아버지, 저 평양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해주세요. 죽었으면 죽었지 신풍서군으로는 가기 싫어요….』 하고 매달리면 큰할아버지나 작은할아버지 중 어느 한 분은 분명히 『저 총명한 것이 얼마나 공부가 하고 싶었으면 저러겠는가….』 하면서 학교 당위원회나 정치부 교장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자신은 계속 평양에서 공부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라도 자신이 뛰어다니면서 평양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으면 아버지 어머니도 어쩔 수 없이 자신만은 평양에 남겨 놓은 채 신풍서군으로 들어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큰할아버지나 작은할아버지 중 어느 한 분이 『인영이는 내가 뒤를 봐 줄 테니까 인숙이와 인화만 데리고 신풍서군으로 들어가거라.』 하고 한 마디만 하시면 아버지나 어머니는 큰할아버지나 작은할아버지 말씀에는 절대로 거역하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자신은 교묘하게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이 열릴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영은 그 실낱같은 한 가지 희망을 믿고 외출 준비를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시기 전에 은혜역으로 나가 평양으로 나가는 열차시간표를 알아두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내일이나 모레쯤 가족들 몰래 평양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무사히 평양에 도착하면 큰할아버지나 작은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울부짖으며 매달려 볼 속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