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승훈

건물 옥상에서 살다보니 밤하늘의 별보다 많은 것이 십자가 네온 불빛이라는 걸 어느 날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요즘말로 말하자면 '초딩'과 '중딩' 시절에 무더운 여름밤 옥상에 올라서도 십자가 네온 불빛을 보았다. 그 시절엔 딱히 고층 건물이 드물었기 때문에 빨갛고 파란 불빛들이 밤하늘에 둥둥 떠 있다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교회 첨탑 십자가 빛이 네온 불빛이라는 것이다. 대형 교회들은 첨단 소재인 엘이디(LED)로 조명을 바꾸긴 하는데 여전히 대다수 가난한 교회들은 네온 십자가를 고집한다.

그리고 또 교회의 변하지 않은 점을 말하자면 이들 교회들이 호명한 예수의 상이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의 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지 않고 고정화됐다는 것이다. 민중의 스타 정치인 노회찬 의원은 삼겹살 불판도 바꾸듯이 이제는 기존 정치체제를 바꿔야한다는 말로 유명세를 탔는데 그의 말을 빗댄다면 한국 기독교는 100년이 넘도록 하나의 불판으로 삼겹살을 굽고 있다.

<혁명을 기도하라>(한승훈·도서출판 문주)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호명하고 머릿속에 그려 넣고 있는 예수와는 전혀 다른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 한승훈은 예수와 기독교를 종교의 범주를 넘어서는 사회 혁명의 코드로 인식하고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를 넘어 인류사에서 반복되어온 불의와 좌절의 역사에 대한 성찰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변방의 사형수, 시대의 아나키스트, 비폭력 혁명가 예수야말로 진짜 예수의 참 모습이라는 것이다.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신 야훼(여호와)는 방랑자와 노예의 신, 성소를 거부한 뒷전의 신이었다. 그러나 2천 년 전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권력은 야훼를 성전에 유폐하고 신앙의 이름으로 민중을 수탈했다. 그때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짜잔! 그의 이름은 바로 예수.

그는 적들로부터 '질서를 파괴하는 자', '술꾼에 먹보', '도적과 세리의 패거리를 이끄는 자'라 비난받았던 남자였다. 그러나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에게는 벗이었고 정치권력과 종교 권력에 맞서 독설을 내뱉고 기존 권력과 체제를 뒤집어엎는 사회 혁명을 부르짖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혁명과 반혁명, 아나키즘과 축제의 예언자로서 예수를 되살려낸다. 1부에서는 위트 넘치는 목소리로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죽음까지의 과정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2부에서는 그 예수를 닮지 않은 한국 기독교의 반혁명을 우리 사회의 역사와 구조 속에서 분석한다. 3부에서는 기독교와 종교를 넘어서서 인류사에서 반복되어온 불의와 좌절 앞에서 예수의 말과 행동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성찰하고, 종장에 이르러 혁명적 영성이라는 화두를 통해 예수의 영구적 사회 혁명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무한의 혁명이다.

이 책은 참 재밌다. 흔히 영화나 그림에서 예수는 멋진 머리칼과 쭉 빠진 몸매에 꽃미남으로 그려진다. 때라고는 한 점 묻지 않는 백색 의상은 신비감과 경외감, 즉 카리스마를 물씬 풍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전하고 있는 예수는 때에 전 누더기 옷을 입고 거지들과 노숙자, 부랑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방랑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왜곡하고 있는 예수를 바로 세우면서 글을 갈무리하자. 대개 기독교인들은 동성애를 죄악시 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 성경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든다. 그러나 그 날의 야훼가 분노한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강간, 정확히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가해지는 집단의 폭력이었다. 또 한 가지. 예수는 거라사 지역에서 불쌍한 한 남자의 몸에 깃든 귀신을 돼지 떼에 깃들게 하여 갈릴리아 호수에 빠트렸다. 남자의 몸에 깃든 귀신의 이름은 '레기온' 즉 로마군단. 율법에 의해 돼지를 먹지 않는 유대 사회에서 돼지를 먹는 유일한 자들은 점령군인 로마군뿐. 그러니까 그 예수는 민중 반란에 대한 탄압이 서슬 퍼런 거라사에서 로마군과 그에 결탁한 토착 권력에 정면으로 맞섰다. 예수는 애매모호한 '사랑' 타령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 이제 삐쩍 마른 나귀를 타고 비천한 자들의 무리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자.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