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그런 말을 들어줄지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신풍서군으로 들어가면 대학은 물론 자기 앞날은 영영 거기서 끝나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가만히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인영은 방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뒤척이다 벌떡 일어나 앉아 무릎 사이에 고개를 떨군 채 또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신풍서군으로 들어가지 않고 직통생(고등중학교 졸업 후 군대나 직장으로 배치 받지 않고 바로 대학으로 진학해 계속 공부하는 학생을 뜻하는 속어)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한동안 고개를 떨군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인영은 몸부림치듯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신풍서군으로 들어가면 자기 앞날은 영영 헤어나올 수 없는 막다른 곳으로 떠밀린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떤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만은 피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아버지한테 가서 신풍서군으로는 가기 싫으니까 평양에서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 달라고 매달려 볼까?

 그렇게 궁리해보다 인영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어젯밤 작은아버지가 날이 밝으면 급히 집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말에 절대 복종하면서 가족과 함께 행동하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지 않고 다시 평양으로 올라가 자신은 신풍서군으로 가기 싫다는 말을 하면 작은아버지가 어른의 말을 듣지 않고 함부로 행동한다고 야단만 치실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작은아버지의 말대로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신풍서군으로 들어가면 자신은 영원히 대학에는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버지 어머니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 죽치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거실로 나와 인숙을 데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누나, 할머니 말씀 들어보니까 아버지는 당에서 연락 오면 신풍서군으로 들어간다고 하시던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인숙은 무슨 대답을 할 수가 없어 절레절레 고개만 흔들어댔다.

 『몰라. 난 그것 아니라도 머리 아픈 것이 많아 당분간 아무 생각도 않기로 했어. 저녁때 아버지 들어오시면 물어 봐.』

 『이건 굉장히 중요한 것이야, 누나? 우리가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평양으로 나갈 수 있으면 다행인데 무슨 사정이 있어 협동농장이나 탄광 같은 데로 무리배치 되면 누나나 나는 이제 다시 평양에 나가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없단 말이야. 누나는 그래도 괜찮아?』

 『그렇지만 오빠가 조국과 부모형제를 버리고 남조선으로 넘어갔는데 학교 당위원회에서 우리를 평양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게끔 놓아두겠니? 결국은 추방되고 말아.』

 『누나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어?』

 『남조선으로 넘어간 배신자 가족들은 모두들 학교에도 나오지 못하게 시골로 추방시키는 모습을 많이 봤으니까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