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동선

며칠 전에 읽은 <아버지니까>(송동선·함께북스)는 가슴을 아리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 송동선은 전직 언론인이다. 저자의 직장생활은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1981년 1월 국제신문 기자로 입사했으나 언론통폐합으로 그 해 12월 부산일보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영광의 순간도 있었다. 1988년에는 노조간부로서 언론민주화투쟁을 벌여 언론사상 최초로 7일 파업을 단행, 편집국장 3인 추천제를 쟁취하기도 한다. 이후 문화부 기자 등으로 활동하다 같은 해 10월 퇴사, 국제신문 복간에 참여하여 정치부 기자 등으로 활동했다. 이후 사회2부장, 체육부장, 편집부 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고, 2006년 12월 29일 명예퇴직하면서 언론계를 떠난다.

이력만 놓고 보자면 저자의 삶은 언론인으로서 노조간부로 언론민주화투쟁을 했을 때를 빼놓고 그럭저럭 평탄한 삶이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비록 지방도시의 신문사 기자라 할지라도 정치권력과 재력가들에게 빌붙어서 살아간다면 호의호식 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만했을 것이다. 기자 말년에 적당한 자리라도 꿰찼을지도.

그렇지만 저자는 참 고지식한 기자였던 것 같다. 그의 아내는 기껏 생활비를 벌충하겠다고 사업을 시작하다 쫄딱 망해버린다. 아예 집안을 거덜내버린다. 저자는 빚더미에 앉게 되고 아내와는 이혼하고 세 아들 중 둘째 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고난을 겪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내의 사업 실패 이후 30년 가까이 일터에서 명예퇴직 강권에 따라 일자리를 잃고, 이혼까지 하며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파탄에 이르렀지만 두 아이로 인해 새로운 출발을 결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한다.

백면서생 출신에다가 예순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먹은 이 초로의 사내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생활광고지 구인란을 보고 운전직인줄 알고 찾아간 직장은 다단계 방문판매였다. 막노동판에 뛰어들어 일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땅속에서 흙투성이가 되도록 일을 하기도 한다. 허름한 월세 단칸방에 혼자 살면서 여름에는 모기에게 온 몸을 뜯긴다. 마트의 점원으로 일하기도 하는데, 몸이 부서져라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하고 한 달간 받은 임금은 고작 120만 원에 불과하다. 그 걸로는 생활비는커녕 이자와 아이들 학비 및 용돈을 대기도 벅찼다. 그래서 결국 그는 고기잡이배를 탄다.

저자의 살아가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사회적 안정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의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이다. 어쩌면 저자의 삶은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저자와 같은 삶을 듣고 보아왔지만 우리의 삶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왔을 뿐이다.

내가 <아버지니까>를 읽으며 아팠던 것은 나 또한 저자와 같은 신문기자며,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즉 동병상련이랄까. 사실 저자보다 지금 내가 더 힘든 삶은 살고 있는 줄도 모른다. 고통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뿐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저자의 삶을 존중하고 백퍼센트 공감한다. 힘겨운 삶이지만 버텨나가는 원동력도 말이다.

저자 송동선은 "내가 아직 아버지인 이상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는 것, 더 이상 나 때문에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 한 가지를 붙들고 일어섰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신파적이며 가족애가 지나치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저자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무슨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겠는가? 야비하고 냉혹한 세상에서 가장으로 아니, 수컷으로 사는 것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고독한 삶이다.

"내게 남은 것은 지금 아무것도 없다. 두 아들은 열심히 공부하며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고, 나는 여전히 빈털터리다. 그런데 제법 마음이 편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고통을 겪고 나서 세상을 보는 나의 눈도 많이 바뀌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여우 가죽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뒤집어쓰겠다고 결심했지만 나는 아직도 어느 것이 사자 가죽인지 여우 가죽인지 잘 분간을 못 하고 있다."

이젠 나도 저자처럼 여우 가죽이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뒤집어써야 할 것 같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