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버릿 딘 마틴

사람은 개인일 때는 현명하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일단 군중에 휩쓸리게 되면 순식간에 바보가 된다.

에버릿 딘 마틴(1880∼1941)이 쓴 <군중행동>(도서출판 까만양)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봉(1841~1931)이 쓴 <군중심리>와 더불어 군중에 대한 최고의 분석서로 꼽히는 책이다.

니체는 군중을 '가축떼'로 비유했다고 한다. 니체의 견해 저변에는 군중에 대한 감정적 혐오감이 깔려있다. 그러나 군중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귀스타브 르 봉은 저서 <군중심리>에서 군중을 단순한 인간 무리가 아니라 '심리상태의 일종'이라 정의함으로써 군중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길을 개척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에버릿 딘 마틴은 르 봉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군중에 대한 보다 진일보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는 군중의 통념을 지배하는 것은 심리적 반성이나 암시의 결과가 아니라 심리분석학자들이 거론하는 무의식적인 '콤플렉스'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강박신경증', '편집광증'의 정신적 질환과 여로 모로 유사한 군중심리는 무의식에서 억압된 것들이 콤플렉스로 표출된 것이라 한다.


그는 또 군중을 '약자들의 손에 들린 보복용 무기'라고 정의했다. 군중은 모든 탁월한 정신을 똑같이 평범하게 절단해버리거나, 미숙한 이기적 자의식을 성숙한 의식처럼 늘려버리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다고 한다. 마틴은 <군중행동>에서 군중에 대한 정의와 함께 다양한 사회현상을 통해 군중의 이기심, 군중의 증오심, 군중의 지배욕, 혁명과 군중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만큼 유효한 분석들이다.

에버릿 딘 마틴의 <군중행동>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사회가 고질적으로 겪고 있는 지역감정, 계층대립, 세대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명료한 단초를 제공해 준다.

에버릿 딘 마틴은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군중의 보편적 속성을 "스스로를 추켜세우고, 스스로에게 환호하며, 자화자찬하고, 단호히 확언하며, 스스로 도덕적 우월성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권력을 지니기만 하면 다른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들 것이다. 여기서 사회의 집단이나 파벌이 군중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기만 하면 저마다 '국민'이라고 주장하는 방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는 말을 통해 설명한다. 나는 '국민'으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 이면의 무의식적 심리에는 군중으로서의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군중의 욕망은 폭동과 집단소요와 같은 정치행위는 물론 인종주의, 왕따, 영웅숭배, 마녀사냥 등의 다양한 사회문화의 형태로 표출된다. 군중의 욕망이 집단폭행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설명한 마틴의 아래 견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따돌림, 악플을 통한 마녀사냥 등의 문제가 내포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적확하게 보여준다.

"대다수 사람들은 혐오스러운 대상이나 개인에게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그리할 뿐이지만 곧장 재미를 느끼고 잔인한 농담을 곁들여 은근히 비웃기도 하다가 급기야는 대놓고 놀려댄다. 농담은 순식간에 모욕으로 바뀐다. 분노의 아우성이 비등하는 가운데 누군가 일격을 날린다. 그 순간 집단폭행이 자행되기 시작한다. 그런 폭행은 군중구성원들이 무의식으로 염원하던 행동이라서 그것은 정의를 위한 일격이다는 구실로 상호간에 용인되기에 이른다."

사실 군중의 가장 강렬한 증오심이 직격하는 대상은 바로 이단자, 불온분자, 배반자이다. 군중심리가 아는 것은 오직 하나의 죄악, 하나의 이단밖에 없다. 모든 종류의 군중은 자신들의 통념을 부인하려는 인물을 향해 그리고 자신들과 결별하여 위협을 가하는 인물을 향해 휘두를 도끼같은 증오심을 품는다.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놓고 볼 때 그 이단자, 불온분자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호남 출신에 가해지는 지역차별과 인신공격, 이주민 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언과 폭행, 학교에서의 왕따 등. 그렇다면 이들을 이단시하고 불온분자로 낙인찍는 군중은 누구인가? 인정할 수 없겠지만 그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