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혁신의 책과 사람/ 삼저주의 - 구마 겐고·미우라 아쓰시

과거 십여 년 동안 인천에 개발 광풍이 지나갔다. 경기부양이란 미명 아래 지역 발전이라는 정치적 구호 아래 토목사업과 신도시, 도시재개발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라는 국가주의 체육구호와도 같은 이념 아래 도시는 거대해지고 웅장해졌으며 하늘 높이 솟았다.

그런데 나는 "도시가 정말 아름다워진 것이냐"고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해답을 일본의 건축가 구마 겐고와 사회학자 미우라 아쓰시가 <삼저주의>(도서출판 안그라픽스)라는 책을 통해 전해주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와 사회학자 미우라 아쓰시가 만나 미래의 건축과 도시, 주택, 사회가 갖춰야 할 모습을 대담 형식으로 살피고 있는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할 교양 필독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크고 높고 빠른 '삼고(三高)'에서 작고 낮고 느린 '삼저(三低)'로 삶과 도시, 공간, 건축에 대한 우리의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마 겐고와 미우라 아쓰시는 먼저 근대의 도시와 건축이 삼고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건물을 새로 짓는 '신축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예고한다. 구마 겐고와 미우라 아쓰시의 건축미학에 따르면 우리의 건축은 아직도 근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인천의 경우 구도심재생 사업이란 것이 고작 옛 건물과 골목길을 뭉개버리고 고층아파트와 아스팔트 대로를 뚫는 것이 전부다. 본 기자는 몇 년 전에 '책과 사람'에서 '에코 뮤지엄'이란 개념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도시의 오래된 가옥과 창고, 골목길 풍경 등이 문화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바로 자연스러운 박물관 역할을 한다는 게 요지였다.

이 책의 저자들도 '신축 시대' 다음의 방법으로 '리노베이션'과 '재사용'을 권한다. 예를 들자면 미우라 아쓰시는 발품을 팔아 발견한 고택의 내부를 필요한 부분만 리노베이션해서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들이 수도권 인근으로 이전하면서 신축을 하는데, 이에 대한 놀랍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제공한다. 저자들은 대학을 구도심으로 이전시키면 거의 건축물 신축에 들어가는 비용이 없다고 한다. 구도심 공간 파괴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

예컨대 야채가게를 농학부 수업 강의실로 사용하고 빈집들을 재활용해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하는 식이다. 공터가 곧 학생들의 산책로이자 휴식 공간이라는 것이다. 구마 겐고와 미우라 아쓰시가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온갖 특혜를 베풀며 송도와 청라에 대학들을 유치하는데 혈안이 돼 있는 인천시와 개발주의자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그런 면에서 비추어보면 인천이라는 곳은 정말 구제불능의 도시다. 하지만 배다리에서 마을공동체를 꿈꾸고 실현하고자 하는 최근 몇 년간의 활동과 움직임은 구마 겐고와 미우라 아쓰시의 삼저주의 도시미학과 맞닿아있어 희망적이다. 어쩌면 배다리 마을공동체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인천 도시공간의 미래의 모습이 좌우될 수도 있다. 가끔 송도 거리를 지나칠 때가 있는데 아파트와 오피스텔 그리고 텅텅 비어있을 고층 건물과 호텔을 보면서 뉴욕이나 도쿄를 모방한 짝퉁 도시를 보는 느낌이 드는데, 인천 곳곳이 그렇게 바뀐다면 정말 상상만이라도 끔찍하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마무리 짓자. 저자들은 도시가 위로만 솟아나서는 안 되고 넓게, 멀리 그리고 느리게 퍼져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인간의 삶과 행동영역도 넓고 멀리 그리고 느리게 바뀌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자신의 신체를 사용해서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식으로, 그야말로 영역 표시를 하면서 이동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전철을 타고)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책만 읽고 있으면 되는, 그런 여행은 자신의 공간을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고 있을 뿐이지 마음은 전혀 이동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보다는 직접 땀을 흘리면서 이동을 하는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일단 집 주위 반경 5킬로미터 정도를 그야말로 개처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정말 멋진 말이자 '삼저주의'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말이다. 독자들이여, 당장 집밖으로 뛰쳐나와 개처럼 돌아다니자! 뒷다리 들고, 개처럼 영역 표시를 하면서 말이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