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 위해 살아갈 뿐 … 언제든 떠날 준비 된 그들의 풍경
   
 


이주, 그 먼 길 - 이세기 지음·후마니타스 304쪽, 1만3천원

한국 사회 이주민의 노동과 삶, 그리고 귀환의 과정을 기록한 책 <이주, 그 먼 길>(이세기·후마니타스)이 지난 주 서점가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주, 그 먼 길>은 시인이자 이주민 인권 활동가로 오랜 시간 활동했던 이세기 시인이 2005년부터 '한국이주인권센터'와 '아시아 이주 문화 공간 오늘'에서 이주노동자, 이주민과 함께하면서 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은 귀환 이주노동자를 만나는 글로 시작한다. 그 만남의 과정은 사실 과거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삶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파키스탄 이주노동자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인천 남동 공단에서 모임이 있는데 함께할지를 묻는다.

좋다고 답한 뒤 찾아가는 공단 길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회합 장소인 공장 기숙사에 들어서자 카오스처럼 벗어 놓은 얽히고설킨 신발이 자못 절경이다. 저것이 바로 삶이라면 그야말로 극적이다. 라호르에서, 카라치에서, 이슬라마바드에서 신발이 끌고 왔을 이주의 길이 불현듯 궁금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 안의 이주노동과 이주의 참상을 전하는 글들은 종종 있었지만, 귀환 이주노동자, 즉 한국 사회에 살다가 자진 출국, 부적응, 강제 추방 등의 사유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을 충분히 살피지는 못했다.

이들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피고, 이를 통해 전 세계적 이주 자체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은, 이주 현상을 근본적으로 살피게 하는 한편, 한국 사회가 이주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은 여기에 주목해, 한 명의 이주노동자, 이주민이 '어딘가를 떠나와,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하다가, 정착하거나 되돌아가는 모습'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을 미화하거나, 그 반대로 투사로 그려내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찾아온 그들이, 자신을 환대하지만은 않는 한국 사회에서 겪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우리 모두는 이주민'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전한다.

"몸이 아파도 병원은 엄두도 못 낸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 비싼 택시비를 내고 가야 한다. 한국인에게 폭행을 당해도 경찰서에 갈 수가 없다.

모국어로 쓰인 책 한 권도, 신문 한 장도 구경하지 못한다. 번 돈을 고향에 송금하기 위해 살아갈 뿐이다.

생활하는 방은 단출하다. 간단한 취사도구와 카펫만이 세간의 전부다. 방 안의 풍경은 그가 언제든지 이곳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