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 박노자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100점을 기준으로 68점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 점수 한번 후하게 잘 준다.

거리에는 실업자와 해고자가 넘쳐난다. 대다수 사람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데 재벌들과 부자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부를 대물림하며 독점한다.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해선 봉건적이라고 쌍심지를 켜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재벌들과 부자들이 부를 대물림하고 독점하는 것에 대해선 모순적이게도 관대하다. 어디 그 뿐인가! 출산율 세계 최하위, 이혼율과 자살률은 세계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이 지경이라면 행복지수가 빵점 또는 마이너스가 되어야 마땅한데 무려 68점이라니!

만약 누군가 "그렇게 대한민국이 싫으면 북한으로 뜨면 될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린다면, 나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배우 권상우가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트리며 외쳤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이번 주에는 경쟁과 지배욕, 소유욕, 탐욕, 차별로 가득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미래에 우리가 만들어야할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을 소개한다. 박노자 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한겨레출판)이다.

박노자 교수는 러시아 출신이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 사회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진보주의자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우리 사회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삐뚤어진 허상과 차별과 지배욕으로 점철되어 있는 부끄러운 치부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나는 이 책이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반성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초적인 지침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보다 나은 삶과 건강한 나라,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말이다.
먼저 그는 한국의 대학을 학문의 전당이 아닌 "이 사회를 손아귀에 쥔 '오너'들의 충견의 훈련장"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의 끈을 놓지 않는다. "민족주의란 적자생존을 골자로 하는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일종의 사이비종교"라고 비판하며 이 민족주의는 "한계 없는 자유인으로 태어난 인간의 자아의식과 사유의 범위를 좁은 영역으로 국한시킨다"고 지적한다.

정말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우리사회의 지배층 및 주류들은 서구 백인들에겐 온갖 친절과 관대를 베푼다. 하지만 피부가 검거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 노동력으로 보일 뿐이다. 그들이야 태생적으로 그렇다손 쳐도 같은 노동계급인 대다수 한국인들도 이주노동자들에게 욕설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그들을 짐승처럼 취급한다.

이 같은 이주노동자 또는 약자에 대한 폭력성은 "한국의 군사주의 문화"에서 기인한다. 그는 "병영을 방불케 하는 훈육 위주의 학교, 폭력이 일상화된 군대야말로, 약자에게 상말과 폭력을 언제나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나 역시 이 말에 백퍼센트 동감한다. '폭력'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란 폭력과 상명하복식 위계질서가 없다면 작동이 되지 않는 구조다.

부의 문제를 보자. 그는 "한국과 같은 극단적인 계급사회에서는 자수성가형으로 사업에 극적으로 성공하거나 천재적 재능과 초인적 인내로 학력 자본(학벌)을 획득하여 주류에 편입되는 등의 예외에 속하지 않는 이상, 맨 밑으로부터 중간으로의 파격적인 계급적 상향이동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역시 이 말에도 백퍼센트 공감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빈곤과 차별이 대물림되며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사회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아있을 수는 없다. 박노자는 대다수의 시민이 '높으신 분'들의 동원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민중이 직접 정치 세력화되어야"하며 민중이 정치세력화 되기 위해선 "굶주림과 구타 속에서 생존과 인권을 위해 파업하는 얼굴 모를 여공의 아이를 인종·종족·종교적 배경과 무관하게 같은 노동자로서 같은 인간으로서 돌봐줄 수 있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 지점에서 다시 출발해야만 한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