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민족과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순국선열과 전몰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마흔다섯번째 현충일(顯忠日)이다. 이날을 맞아 우리 모두는 경건한 마음으로 호국용사들에게 꽃 한송이라도 바쳐야겠다. 특히 이번 현충일은 6·25때 총부리를 마주했던 남·북이 영수회담으로 화해무드가 무르익어가고 있는 가운데 맞게 되어 조국수호에 앞장섰던 그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국가경제가 위기에 몰려 IMF(국제통화기금)관리를 받다가 이제 회복할 수 있게 된 것도 애국 애족에 바탕을 둔 선열과 전몰장병의 희생정신이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을 맞는 우리는 더욱 숙연해지는 것이다.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장롱속에 넣어두었던 금붙이를 나라를 위해 내놓은 것도 먼저 가신 그분들의 희생정신이 살아있었기에 우리의 경제추를 되돌려놓을 수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만큼 우리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기틀마련에 혼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최근 일부 계층은 나라살림이 다소 나아졌다고 현충일을 단순히 공휴일 정도로 인식하고 경거망동하고 있으니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현충일이 무슨 가족나들이 가는 날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호국영령들을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산화한 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욕되게 하는 일이 다반사로 빚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오늘의 이런 현상은 우리사회의 원로인 전전(戰前)세대들이 전후세대들에게 현충일 제정취지와 숭고한 희생정신을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한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세계를 주름잡던 강국들은 정신적 가치나 자산을 역사의 교훈에서 찾아 국민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전몰장병이나 아직도 병상에 누워있는 참전부상용사들을 너무 외면해오지 않았나해서 되짚어볼 문제가 아닌가한다. 따라서 이날만은 온 국민이 숙연한 마음으로 순국선열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을 승화시키는 각오를 다져야함을 강조한다. 나라를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이 부끄러운 세상을 살았다고 후회없도록 한을 풀어 드려야 한다. 6월은 보훈의 달이다.

또 유적지 파손인가

 마을 이주단지를 조성한답시고 벌이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의 무분별한 개발로 시흥시 오이도 조개무지(패총)가 훼손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려니와 우리의 것을 사정 없이 뭉개버리는 사려 깊지 못한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그래서인가, 난개발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다. 조개무지를 끝내 보존할 수 없으리라는 무력감과 함께 실망감이 깊어지고 시민 단체가 중심이 돼 무분별한 개발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이일대에서 서울대 인문학연구소에 의해 발굴된 유물만도 줄문토기 석부편 공이편 등 50여점에 이르고 있으며 이밖에 수혈주거지 3기, 야외노지 4기 등의 유적도 발견됐다는 점을 미루어 보더라도 그만큼 선사 시대의 각종 유물이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미 이 지역에서 발굴된 선사 시대의 유물 만으로도 우리나라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에 충분하다. 이를 감안 할때 그 사유야 어떻든 간에 개발하려는 그 자체는 선대의 역사를 땅속에 묻어 버리겠다는 발상과 다름 없다 하겠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주변은 물론이고 인적이 드문 해변가 어촌마을 조차 어김없이 문화유적을 훼손하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난개발의 대상이 되다 보니 국토가 만신창이가 될 것이라는 시민들의 개탄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시민연대는 더 두고 볼 수 없다며 오이도 패총 보존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시민연대는 건의서를 통해 수공의 오이도 개발공사에 따라 문화재 지표조사 시행 과정과 그 진위를 철저히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곳에 문화재 보호구역을 설치하고 국가사적지 또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사유물이 출토됐다는데도 여기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은 개발 만능주의 탓이며 개발만이 제일이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귀중한 문화재가 무참히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부와 그 산하 기관이 국토 난개발의 주역이나 된듯 유적지 보존이나 환경 보호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기회만 있으면 개발쪽에 무게를 두어 왔다. 유물만 발굴하고 유적지를 보존하지 않으면 조개무지의 역사적 가치는 없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