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0년 황산대첩 상세 묘사 … 작가 서권 유작


 

   
 

<시골무사 이성계>(서권·다산책방)는 부패한 권문세족과 무능한 왕에 의해 백성이 신음했던 무렵의 장수 이성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역사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이성계가 인월(引月)에서 일만의 대군을 거느린 왜적 '아지발도'와 국운과 개인의 운명을 건 단 하루의 전투(황산대첩, 1380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투 초반의 이성계는 쿠데타를 일으킨 카리스마 넘치는 무장이며, 근엄하며 보수적인 조선 태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평생을 변방의 전장에서 칼을 휘두르며 공을 세웠으나, 중앙 정계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승진에서는 줄곧 미끄러지는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만 그려질 뿐이다.

이성계는 이 하루의 전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칼을 부딪치며 숨은 욕망을 발견하고 천명을 받들어, 좀 더 다른 세상과 새로운 운명을 꿈꾼다. 이때 이성계의 나이는 많은 이들이 무엇인가를 꿈꾸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 그 시절이라면 더더욱 뒷방 노인네 취급이나 받았을 나이인 마흔여섯 살이다.

이 소설의 가장 특징이라면 역시 단 하루 동안의 전투 과정을 그리고 있는 점이다. 하루의 핍진한 전투 과정과 스펙터클한 전쟁신은 독자들을 "당대 역사현실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고증과 묘사를 무기로" 펼쳐지는 수컷들의 세계로 안내하고, "화살을 쥐는 들숨과 당겼던 살을 푸는 날숨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한다.

이 소설은 아지발도와의 싸움에서 이긴 후,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전한 "우리의 의지가 전설을 만든 것"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늦었다 해도, 모두가 망상이라고 말해도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맞서 팽팽한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자들만이 접할 수 있는 아름다운 변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골무사 이성계>는 작가 서권의 유작이다. 지난 2007년 실천문학신인상에 단편소설 <검은 선창>으로 당선된 서권은 등단 이전부터 주변 작가들에게 작가로서 인정을 받아왔다. 그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면서도 1만 5천 매가 넘는 원고를 쓰던 사람이었다.

작가 서권은 2001년부터 꼬박 7년에 걸쳐 1930년대 만주 항일 독립투쟁을 그린 대하장편소설 <마적>을 완성했다. 언제 책으로 펼쳐질지 모를 작품을 그는 고집스레 써내려갔다.

한 '시골작가'의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독한 의지는 그가 마지막으로 쓴 <시골무사 이성계>에서 의지로써 전설을 만들어낸 이성계란 인물에 그대로 녹아 있다. 작가가 세상을 뜬 나이와 소설 속의 이성계의 나이는 비슷하다. 비록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시골작가와 시골무사는 묵묵히 세상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