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준·정승일·이종태

향후 대한민국 정치 지형도를 가늠하는 4·11 총선이 끝났다. 민심을 얻기 위한 여야의 정치 공방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우리 삶의 질을 바꾸기 위한 비전 제시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지난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우리 경제를 진단하고 사회적 대타협과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정승일 박사, 이종태 <시사 IN> 경제·국제팀장의 대담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도서출판 부키)는 우리 사회체제의 새로운 비전과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꼭 눈여겨볼 책이다.

이들은 진보와 보수, 좌와 우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가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는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우리 정치·경제·사회 체제가 유럽형 복지국가로 나아가야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먼저 이들은 노무현 정부와 진보적 지식인 집단의 실패는 "재벌개혁, 관치 금융 폐기 등 신자유주의 노선을 진보로 믿고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양극화와 빈부 격차, 실업이 심화됐고 이를 견디지 못한 국민들은 이명박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야말로 "원조 신자유주의자"라고 한다.

신자유주의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몰락하고 비정규직, 실업자가 양산되는 등 우리 경제가 피폐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국민들은 원조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이건 뭐, 파출소 피하려다가 경찰서 만난 것이며 홍두깨 피하려다가 서까래에 한방 세게 얻어맞은 격이다.

신자유주의란 '정치와 경제의 완전한 분리', '노동 시장 유연화', '금융 시장 자유화', '완전 경쟁시장 추구' 등의 원칙 아래 작동한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주의와 맞닿아 있다. '정치 경제의 분리', '유연화', '자유화' 등등 왠지 꽤 말랑말랑하고 좋은 말 같다. 그러나 이 '시장주의' 즉 '주주 자본주의' 또는 '금융 자본주의'가 오늘날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원흉이며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숨통까지 틀어쥐고 있다고 한다.

금융 자본주의 또는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은 기업 경영의 목표를 주주의 이익 극대화에 두고 있다.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기업들은 당장 수익이 나는 분야에만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기업운영으로 발생한 이윤이 연구 및 생산 시설 확충에 재투자되지 않고 주주로 포장된 금융자본에게 배당금 형식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 같은 금융 자본주의 또는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의 매출과 수익성이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신규 일자리는 거의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주주 배당은 늘어나고 주식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고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노조와 고임금 때문에 기업이 망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기업이 망하는 이유는 바로 기술혁신과 R&D 투자, 신사업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금융 자본주의 때문인 것이다. 독일의 폭스바겐이나 벤츠의 노동자들은 미국의 GM 노동자들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고 강력한 노조로 조직되어 있는데, 실제로 망한 기업은 GM이라 것은 금융 자본주의의 폐해의 극명한 예다.

이 같은 이유로 저자들은 한국 경제가 "금융시장과 주주 자본주의를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통제·규제하고 산업 정책과 정책 금융을 일관되게 시행할 수 있는" 체제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1980년대 레이건노믹스와 대처리즘을 비롯해 클린턴과 블레어, 부시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및 금융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의 대안은 무엇일까?

장하준 교수를 비롯한 저자들은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바로 복지국가를 들고 있다. 사실 저자들이 신자유주의, 금융 자본주의를 비판한 이유는 복지국가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복지는 우리 경제의 생산과 분배를 올바르게 하는 '선순환 시스템'이며 복지국가야말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생산에 유리한 사회를 형성하는 증거라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