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아줌마·택시기사 등 이웃이야기 그대로 기록
   
 

전태일문학상과백석문학상을 수상한 김해자 시인이 민중 구술집 <민중열전-당신을 사랑합니다>(삶이보이는창)를 출간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묵묵히, 그저 제 할일 하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날것 그대로의 서사를 온몸으로 받아 기록한 책이다.

마장동 우시장에서 내장을 손보는 아줌마, 공장에서 몸을 버리면서도 일을 놓을 수 없는 아저씨, 30여 년간 택시 운전을 한 택시기사, 여든 가까운 나이까지 찬 바다에 몸을 담그며 일하는 해녀, 콩 튀듯 팥 튀듯 살아가는 농사꾼, 갖가지 힘든 사연들을 안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이 그대로 펼쳐진다.

저자 김해자 시인은 <당신을 사랑합니다>에서 특히 '생명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말을 받들고, 암과 싸우는 아저씨의 자아성찰을 소중하게 채록하고,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방외인의 존재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이 같은, 세상의 심층과 소통할 때 필요한 인내와 연민을 현대의 사람들은 감내하지 않는다.

스펙터클한 영상과 이미지의 과잉으로 범람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그것들은 무표정한 발밑을 그냥 지나쳐갈 뿐이다.

저자는 부드러운 위안의 손길로 고된 노동을 쉬게 하고, 고초의 삶들을 위무한다.

무대 밖으로 버려지는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설령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기억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간의 삶이 어떻게 '현실을 갖지 못한 관념'일 수 있겠는가?

그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모든 이들에게 저자 김해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읽다 보면 죽은 역사가 인격을 얻고, 잊혀가던 연대기들이 생물처럼 꿈틀댄다.

이 정직한 구술 서사가 보여주는 아웃사이더들의 넉넉함, 질투와 변덕의 무늬, 일상의 난폭한 실랑이들은 문학의 장르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의 깊은 곳'에 대한 표현물인 것이다.

마흔 다 되어 늦깎이로 등단한 김해자 시인은 시집 <무화과는 없다>와 <축제>를 펴냈고 전태일문학상과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요즘은 글을 쓰며 자그맣게 농사도 짓고 바느질도 하며 산다.

특히 한 땀 한 땀 실을 꿰어가는 일에 재미를 붙였는데, 일복 겸 외출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몸빼와 앞치마는 밥벌이할 정도의 수준은 된다고 한다.

늦둥이로 자라선지 남부시장 노점이나 밭에서 막걸리 몇 사발 나누어 먹는 어머니 또래 친구들이 많다.


칠순 팔순 나이에 제 밥벌이를 하며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그들의 얼굴과 손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읽고 배우면서, 희망 없어 보이는 지구별에서도 삶이란 참 거룩하고 따스한 거구나, 대지와 허공에 대고 절을 한다고 한다.

352쪽, 1만3천원.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