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옌롄커

지난 한 주 동안 책 열권을 게걸스럽게 탐독했다.

누군가 한주에 책을 몇 권이나 읽냐고 내게 물어온 적이 있다.

우문이다.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질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요즘 읽은 책 중 인상 깊은 거는 뭐냐 라는 질문이 적절할 듯싶다.

지난주에 읽은 책은 아니지만 요즘 읽은 책 중에 중국 소설가 옌롄커의 장편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도장을 찍어놓은 듯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는 말은 1944년 중국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이 내세운 정치 구호다.

나는 이 구호가 참 호감이 간다.

다소 집단성과 강제성이 있는 구호이긴 하지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슬로건은 자본주의 체제건 사회주의 체제건 간에 최고의 가치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무 살 무렵에는 레닌의 정치론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에 '필'이 꽂혔지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말보다 더 고귀하며 인간애가 넘치는 구호를 나는 여태껏 들어본 바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치성 짙지만 인간애로 충만한 이 슬로건은 지구 그 어디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

세계 평화를 외치는 미국이 오히려 세계 평화를 파괴하는 것처럼, 우리 정치인들이 서민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부르짖으며 실상은 재벌과 소수의 부자들의 배만을 불리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어느 군부대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인민해방군의 모범병사 우다왕은 마오쩌둥의 어록을 줄줄 외울 정도로 사상이 투철한 스물여덟의 청년, 아니 유부남이다.

그는 사단장과 사단장의 젊은 아내 류롄을 위해 각종 요리를 만들어내는 취사병이기도 하다.

그는 사단장 부부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 곧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사단장의 부인 류롄은 우다왕에게 마오쩌둥의 정치 구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새겨진 나무 팻말을 가리키며, 국가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 군인으로써 책무를 해야 하는 만큼 사단장의 부인인 자신을 위해 애정(?)을 다해 최선의 봉사(?)를 해줄 것을 명령하면서 고귀하고 숭고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혁명적인 슬로건은 남녀상열지사, 욕망의 언어로 전락한다.

이 소설은 2005년 출판 직후 파격적인 성애묘사와 중국의 혁명 정신을 희화한 이유로 금서로 지정당하고 만다.

이 소설을 읽어보면 곧 공감하겠지만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억압이 나타나있다.

중국 인민들의 고통과 억압의 근원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의 붕괴이다.

혁명은 굴절되었고 권력이란 실체만이 남았으며, 불평등과 억압은 심화됐다.

작가 옌렌커는 이 소설에서 바로 혁명의 굴절을 고발하며 진정한 인간애를 갈망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서민을 위한 정치'는 시장에서 어묵과 국밥, 떡볶이를 사먹으며 사진 한두 방 찍는 쇼로 대체된다.

"정치의 반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고 정치의 나머지 반은 유권자에게 그 이미지를 믿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처럼 정치권력은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서는 국민을 물어뜯는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이를 뼈저리게 보아왔다.

빈부격차, 비정규직 양산, 전세 값 상승, 취업난, 고물가, 천만원대가 넘는 대학등록금 등으로 국민들이 고통 받음에도 불구하고 수천억 수조원 아니 수십조 원에 이르는 돈을 물 쓰듯 쏟아 붓는 토목공사판이 벌어졌다.

'국민을 위한다'는 혹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복무하겠다'는 정치 슬로건을 앞장세우면서 말이다.

그들의 '국민을 위한다'는 슬로건은 작가 옌롄커가 지적한 것처럼 위선이며 땅바닥에 팽개쳐진지 오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로건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그 슬로건을 실현시켜야할 책무도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

소설에선 좌절된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현실을 좌절된 상태로 남겨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말을 이가 닳도록 곱씹고 또 곱씹어야만 한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