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드롬'으로 본 기성정치 …'여론조사 민주주의'등 비판


 

   
 

계간 <황해문화> 2012년 봄호(통권 74호)가 발간됐다.

<황해문화>는 4·11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우리 정당정치를 둘러싼 문제와 위기 현상들의 원인, 처방을 다룬 특집 '정치의 불안인가 새로운 정치의 출현인가'을 마련했다.

먼저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라는 글에서 '안철수 현상'을 포함한 '시민정치론', 각 정당들의 경쟁하듯이 채택하고 있는 '국민경선' 등이 흔히 말하듯 민주주의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위기와 정치적 퇴행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정치와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당정치의 제도적 구현에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그렇기에 그러한 현상들은 오히려 당원의 위상과 역할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것으로 정당의 존재 이유마저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지금 한국 정치의 불안, 위기의 주된 원인은 새로운 인물의 빈곤에 있다기보다 사회균열을 반영하는 정당정치의 빈곤에 있다. 정당은 있는데 정당민주주의가 없는 현실, 특히 '노동 없는 정당민주주의'가 문제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여론조사에 의해 점령된 정치'란 글에서 '서베이 민주주의', 즉 '여론조사 민주주의'를 통해 '정치의 불안'을 진단하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안철수 현상'처럼 특정인물이 정치적으로 급속히 부상한 예는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이념·정책의 차이가 희박한 정당체제, 즉 보수독점적 정당체제의 지배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중심주의의 도드라진 예라는 점에서 보면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론이 아니라 여론조사가 정치인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여론조사에 의해 증폭되는 인물중심주의적 경향은 이념, 정책 등 공공적 이슈보다는 대중의 욕망이 각인되어 있는 특정 인물의 이미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로 그 유동성이 크며, 따라서 열정과 실망 사이를 오가는 사이클 또한 잦다고 부정성을 지적한다.

박권일 <자음과 모음 R> 편집위원은 '세대와 정당정치-정치적 세대동맹의 역사와 의미'에서 '세대동맹'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우리 정치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그에게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제기되고 있는 20대에서 40대까지의 세대동맹이라는 언술은 오히려 낯선데 그동안 문제시된 것은 세대동맹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2040세대의 동맹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공통기반은 미디어 리터러시와 그들이 이념적으로 부동층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은 필요조건일 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다른 조건, 즉 선거의제가 얼마나 대립적으로 선명하게 부각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은 '자본주의 위기시대의 좌파정치 위기-좌파정치, 흡수인가 전환인가'라는 글에서 한국정치의 불안과 위기를 계급관계에 주목하는 좌파정치의 빈곤이라는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는 통합진보당으로 귀결된 그간의 진보대통합논의를 비판적으로 복기하면서 지금 진보좌파에게 요구되는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면화된 자본주의 위기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정치를 꾸준하게 일궈나가는 작업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당장 의석을 대폭 늘리고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은 '탈정당정치의 정치-풀뿌리정치의 꿈틀거림'이란 글에서 기존의 정당정치에 대해 발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필자들의 논의와 결이 다르다. 무엇보다 정치, 민주주의를 기존의 정당정치에 고정시키고자 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에게 새로운 정치의 중심은 정당이 아니라 풀뿌리운동이다. 이제 이 운동(정치)은 탈정당을 넘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였고 최근에 구체화되고 있는 녹색당 창당 움직임은 그 가능성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당들은 시민의 징검다리가 아니었고 오히려 '정치세계'를 파괴해 왔기 때문에 왜곡된 정치세계를 보존하고 활성화시킬 새로운 정당은 '탈정당정치'가 아니라 '비(非)정당정치'를 추구해야 하며 모든 정치과정을 제도정치 속으로 제한하는 게 아니라 정치의 과정 자체를 넓혀 제도와 일상 속에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집 외에도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다카하시 데츠야(高橋哲哉) 도쿄대학 교수 그리고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가 후쿠시마 현지를 방문하여 벌인 좌담 '원전과 국가 그리고 민주주의-후쿠시마 그 이후'가 볼거리다.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대중의 시야와 뇌리에서 시나브로 밀려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사태'에 간직된 여러 의미들, 그 속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국가주의와 그를 매개로 한 마이너리티에 대한 배제와 차별문제, 천황제를 골간으로 해 국가, 관료, 전력산업자본의 삼각동맹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원자력무라(原子力村)', 그리고 그것에 기생하는 주류언론과 '지식기술자'의 비윤리, 탈원자력 운동의 주체형성 문제 등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생동감 있게 다루고 있다.

비평에서 이희환 <황해문화> 편집위원의 해제가 첨부된 인천 출신 공산청년 김동석에 대한 고(故) 신태환 선생의 글 '인천(仁川) 출신 한 공산청년(共産靑年)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 글은 벗을 그리는 짧은 '회고조'의 글이지만 식민지 시대와 반공분단체제의 형성기를 살다간 지식인 공산청년의 삶을 통해 역사와 정치, 이념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의미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432쪽.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