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빈 얄롬 

이번 주에도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지난주에 독일의 의학자 미하엘 데 리더의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를 소개했다. 본 기자는 몽테뉴의 '죽음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우리 삶의 본질은 우리의 죽음을 가꾸어 가는 지속적인 도전에 있다'는 경구를 인용하며 독자들께 '죽음'에 대한 사색을 제기했었다.

이번 주에는 '죽음'에 대해 철학적인 사색으로 한 발 더 나아가자. 미국의 정신 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어빈 얄롬의 명저 <보다 냉정하게 보다 용기있게>(도서출판 시그마프레스)를 따라가면서 죽음에 대한 실체에 대해 접근해 보자.

이 책의 원제는 'Staring at the Sun'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태양을 바라보기' 또는 '태양을 응시하기'다. 책 제목은 프랑스의 고전작가 라로슈푸코(La Rochefoucauld)의 "태양이나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라는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태양을 똑바로 바라본다면 우리 시력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만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자연세계를 유지시켜주는 태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육체에 죽음을 매달고 산다. 생과 사는 한 몸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 존재의 일부인 '죽음'에 대해 전혀 사색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죽음을 금기시하며 생의 양면 중에 한 면인 죽음을 어둠의 이면 속 깊은 곳에 은폐시키려고만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생을 다할 때까지 죽음에 대한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억눌리며 살아간다. 나는 미하엘 데 리더의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한 회피적인 태도가 불합리한 삶이라고 느꼈다.

어빈 얄롬은 <보다 냉정하게 보다 용기있게>를 통해 에피쿠로스, 쇼펜하우어, 프로이트, 니체, 사르트르 등 철학자들과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문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전하면서 독자들에게 '죽음'이야말로 삶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전한다.

저자 어빈 얄롬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영혼을 치료해야 한다. 철학에는 하나의 목표, 즉 인간의 정신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목표가 있다. 그리고 그 고통의 근원은 우리 곁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을 인용하며 '죽음'이 인간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죽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

프로이트는 대부분의 정신 병리가 "성(性)을 억압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믿었으나 어빈 얄롬은 "성 억압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유한성(죽음)을 억압하는 것이 정신 병리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 인간의 정신적인 질환, 고통의 근원에는 '죽음'에 대한 회피와 억압 그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빈 얄롬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적극적으로 직면'하며 바라보고 응시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에 대한 태도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한다고 충고한다.

자, 이제 '죽음'의 본질로 접근해 가보자.

어빈 얄롬은 "물리적인 죽음은 우리를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해준다"고 말한다. 또한 "죽음에 직면하는 것은 해로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더 풍요롭고 더 열정적인 태도로 인생을 살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본 기자는 삶에 대한 두려움의 근저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본 기자는 실존적 인간으로서 지금 내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하면 충만하게, 행복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그것은 결코 종교를 통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죽음의 얼굴을 쳐다봄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고 내 생에 부과된 의미를 더욱 신랄하게, 더욱 정확하게, 더욱 생기 있게 만들어 줄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 느낌은 통렬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강렬했다.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