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하엘 데 리더

작년에 모 노시인이 별세했다. 유신정권에 맞서 문인들의 시국선언을 주도했고, 이 때문에 인간백정들이 우글거리는 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강단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병문안을 간 내게 "인간은 생로병사를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데 병이 없이 생로사의 과정을 겪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 '책과 사람'에서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인간은 병들어 죽기 마련이다. 병이 드는 것은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걸 의미한다. 나는 늙고 쇠약해지는 것에 대해선 두려움이 없으나 거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질병과 고통에 대한 극심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아직 한창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공포 때문에 가위에 눌린 적도 있다. 혼자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질병이라는 숙명, 아니 형벌을 짊어진 내 존재에 대한 나약함에 전율한다. 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질병의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 라는 … .

미셀 몽테뉴는 "죽어감과 죽음은 인간 삶의 변치 않는 특징에 속한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우리 삶의 본질은 우리의 죽음을 가꾸어가는 지속적인 도전에 있다"고 말한다.

독일의 의학자 미하엘 데 리더는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학고재)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이 죽음을 가꾸어가는 것'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며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 미하엘 데 리더는 독일 의료현장에서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일한 전문의다. 그는 의사로서 수많은 말기 환자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보아왔다. 추측컨대 하루도 빠짐없이 수많은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목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병원에서 그리고 현대 의료체계에서 목도한 죽음의 과정과 의료행위는 결코 인간적이지 못했다.

우리는 현대 의학이 인간을 질병의 고통과 공포로부터 구원하며 수많은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현대 의학은 첨단 의학기술로 죽음을 앞둔 환자를 소생술과 연명 치료 같은 수단을 동원해 살려낸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연장하면서 단지 억지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많은 환자들이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았을 텐데 이제는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하면서 살아도 살아있지 않으며 극심한 고통을 벗어날 유일한 해방수단인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인간의 삶에서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 죽음을 가로막는 행위가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해선 미하엘 데 리더의 진술을 조금 더 들어봐야 한다.

저자는 지속의식불명상태(식물인간) 환자들은 현대 의학이 아니었다면 그런 상태에 빠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들 환자들은 사실은 '의학적 공예품'에 가까울 뿐이라고 말한다. 삶의 과정에 다시 참여할 전망이 전무한 완전 의존 상태에서 단순히 목숨만 유지하는 삶, 기나긴 침묵과 고립 속에서 살아가도록 강요받는 그런 삶이야말로 일종의 학대라고 선언한다.

그는 치료불가의 말기 환자들을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살려둘 것이 아니라 평화롭게 죽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생명 연장이 아닌 인간이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돼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기결정권'이야말로 인간 존엄의 핵심이다.

나 역시도 이 말에 동의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타인에게 맡겨 놓는 것은 비극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엄중한 훼손이다.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할 경우 의사는 환자가 미리 작성해둔 '사전의료지시서'에 따라 치료를 거부하거나 심지어 죽음을 허용해달라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의료지시서'란 환자 자신이 심폐소생술이나 생명 유지 장치 등을 사용하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삶을 존엄하게 마감할 권리가 있음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인간이 평화롭고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에 대해 묻고 있다. 이제 독자들이 고민해야할 때이다. 죽음은 우리의 일부분이지 않은가?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