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구월동 집배원 살인사건


아파트 비상계단서 사체 발견

핏자국·머리 상처로 피살 의심

부검 결과 둔기 구타사실 확인

남동署, CCTV·금전내역 수사

채무관계 얽힌 직장동료 검거

인천지법, 징역 20년형 선고
 

   
▲ 인천경찰청 과학수사계 입구



인천일보가 '과학수사(CSI) 인천, 완전범죄는 없다'란 제목의 특집 기사를 격주(월요일자 20면)마다 연재합니다.

이는 인천경찰이 최근 몇년간 인천에서 일어난 살인·성폭행·유괴사건 등 각종 강력범죄를 과학수사로 풀어가는 과정을 담은 기획물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과학 수사의 힘을 느껴보세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사라진 집배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혹시 저거 영철(가명)이 아니야? 이럴수가! 죽었잖아."

지난 2011년 3월3일 오전 7시40분. 남동구 구월동의 한 아파트를 살피던 남인천 우체국 집배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날 우편 배달을 나간 뒤 연락이 끊긴 동료 집배원 김영철(32) 씨가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16~17층 사이 비상계단에 쓰러져있던 그의 사체 옆에는 볼펜과 쓰다 만 우편물 배달통지서가 놓여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김씨가 우편물을 급하게 배달하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사고(실족사)를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주변 정황과 김씨 사체 곳곳에서 이상한 점들이 눈에 뗬다.

우선 계단 벽에 튄 혈흔(핏자국)이 넘어진 것 치곤 너무 많았고 머리에 난 상처도 묵직한 둔기에 맞아 찢긴 열창에 가까웠다.

게다가 김씨 머리에선 피하출혈의 흔적도 나왔다. 여기서 잠깐. 사람이 죽으면 살아있을 때의 생리작용이 사라지고 시체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변화가 나타난다.

법의학에선 이를 시체현상이라 부르는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피하출혈'이다.

이것은 신체 일부분이 둔기에 맞아 피부 밑 모세혈관이 터져 생기는 생활반응으로 죽은 뒤에는 절대 발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김씨는 살아있을 때 뭔가에 큰 충격을 받아 피를 흘린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장상환 남동경찰서 강력1팀장은 살인사건을 직감했다. 그는 곧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체부검을 의뢰했다.
 

   
▲ 동료 집배원을 살해한 뒤 부평구 삼산동의 모 찜질방에 숨어있던 윤모(41) 씨가 경찰에 붙잡혀 인천남동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사진제공=인천남동경찰서


▲혈흔, 진실을 말하다

'모든 접촉은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다.'

과학수사의 개척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 박사가 남긴 말이다.

이는 과학수사의 으뜸 원칙으로 인천경찰청 과학수사계 디지털 증거분석실 앞에 새겨진 글귀이기도 하다.

모든 범죄현장엔 범인과 피해자 사이의 접촉 흔적이 남는데 경찰은 이를 갖고 수사를 하고 국과수는 이런 흔적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이 사건의 자물쇠를 푼 것도 바로 접촉 흔적의 하나인 혈흔이었다. 남동서의 부검 의뢰를 받은 국과수는 현장에 남아 있는 혈흔으로 범죄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혈흔 형태분석'에 돌입했다.

김씨가 실족사했다면 현장엔 수직으로 떨어진 핏자국(낙하 혈흔)만 주로 있어야 하는데 계단 벽면엔 이탈 혈흔(cast-off·피 묻은 흉기를 휘두를 때 떨어져서 날아가는 혈흔)이 꽤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국과수의 혈흔 형태분석법은 피해자를 공격한 위치와 방향, 공격 횟수, 흉기 모양 및 공격 방법까지도 재구성이 가능한 수준이다.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된 이틀 뒤(3월4일) 국과수의 부검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그의 사망원인은 '머리를 둔기로 20여 차례 내리친 다발성 두부열창에 의한 과다 출혈'이었다.

남동서는 강력팀 전원을 투입한 수사전담팀을 꾸렸고 수사는 주변 인물과 현장 CCTV를 확인하는 등 잔혹한 살인마를 추적하는 방향으로 급물살을 탔다.

김씨 사체는 말이 없었으나 그의 혈흔은 범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 동료 집배원을 살해한 윤모(41) 씨가 사건 당일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사진제공=인천남동경찰서


▲범인은 야누스의 가면을 쓴 동료 집배원

김씨 사망원인이 사고사가 아닌 타살로 나오면서 경찰은 각종 증거 수집에 몰두했다.

경찰은 지난해 3월5일 숨진 김씨가 지난 2009년 제2금융권에서 3천850만 원 가량을 대출받은 뒤 이 돈을 열차례나 동료 집배원 윤모(41) 씨 통장으로 송금한 내역을 확인했다.

이로 인해 숨진 김씨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윤씨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러나 두차례 이뤄진 경찰조사에서 윤씨는 김씨와의 금전 관계를 모두 부인했다. 무엇보다 그에겐 사건 당일 다른 곳에서 우편물을 배달했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수사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을 무렵 유력한 증거가 잇따라 나왔다.

윤씨가 사건이 일어나기 두달 전인 지난해 1월24일 남구 주안동의 한 은행 현금 인출기에서 김씨 카드로 자신의 통장 계좌로 돈을 송금하는 장면과 사건 당일 검은색 바지와 흰 모자, 마스크를 쓰고 범행 현장 주변에서 김씨 뒤를 쫓는 모습이 CCTV에 고스란히 찍힌 것이다.

여기에 남인천우체국 CCTV엔 윤씨가 범행에 쓴 망치를 빨간 상자에 넣어 들고 다니는 장면이 녹화됐고 마스크와 장갑을 구입한 영수증도 확인됐다.

그가 강력한 알리바이로 내세운 우편물 고객(수취인) 피디에이(PDA) 서명도 모두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여러 증거가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윤씨는 지난해 3월10일 가족에게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고 부산 태종대 인근으로 도주, 이후 대전과 서울역을 거쳐 부평구와 계양구 일대를 오가며 경찰 추적을 따돌렸다.

그러던 그는 지난해 3월12일 오전 10시30분 부평구 삼산동 모 찜질방에 숨어있다 휴대전화를 위치추적한 경찰에게 결국 붙잡혔다.

 

   
 

범행 동기는 돈이었다. 지난 2008년 7월 우체국에 같이 입사해 김씨와 3년을 친형제처럼 지내온 윤씨는 김씨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할 처지에 놓이자 끝내 살인을 선택했다.

더욱 경악스러운 일은 윤씨가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인 지난해 3월1일 한차례 살인시도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날 평소 자주 가던 남동구 만수동의 한 술집으로 김씨를 불러낸 뒤 농약을 탄 커피를 먹이려했으나 여종업원이 커피잔을 쏟는 바람에 첫 살인에 실패했다.

이후 그는 단골식당을 찾아 멀쩡하게 밥을 먹었고 김씨 장례식장에선 누구보다 슬퍼하며 눈물을 쏟았다. 주변 사람들 중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의 잔혹한 이중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난해 3월15일 진행한 현장검증에서 윤씨는 모든 범행을 시인했다.

범행에 쓴 도구와 살해 방법, 사망시간 등 모두가 국과수·경찰조사 결과와 일치했다.

인천지법 형사 12부는 지난해 7월5일 윤씨에게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 현대판 '셜록 홈즈' 수사 … 어떻게 시작됐나


1950년 프랑스 '에드몽 로카르' 과학수사 문 열다


韓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설치 … 법적 감정·사체부검 활동



과학수사(CSI·Crime Scene Investigation)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과학을 접목해 사건을 풀고 범인을 잡자는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쓴 코넌 도일이다.

그는 명탐정 홈즈를 통해 과학 지식을 어떻게 수사에 활용하는지를 알렸다.

1302년 이탈리아 볼로냐의 의사 바르톨로베오 다 바리냐나가 사람 몸을 처음 부검했다.

고 프랑스의 독물학자인 마티외 오르필은 1814년 독극물을 검출하는 방법과 독극물이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면서 독성학의 문을 열었다.

1800년대 후반부터는 지문이 수사의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영국 외과의사였던 헨리 폴즈는 1880년 지문의 중요성을 담은 논문을 최초로 발표했고 1892년 영국의 유전·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핑거프린트(지문)라는 책을 펴내면서 지문을 실제 수사에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경찰인 후안 부체티크는 1892년 세계 최초로 지문을 이용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6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모든 사람의 지문을 입력·검색할 수 있는 지문 자동 식별 시스템(AFIS)을 개발했고 현재 우리나라 경찰도 이를 쓰고 있다.

하지만 현대 과학수사의 문을 연 장본인은 1950~1960년대 프랑스의 셜록홈즈로 유명세를 떨친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 박사다.

그는 미세먼지와 흙, 옷 실밥 및 금속 파편 등 미세 증거물을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해 실제 수사에 활용했다.

특히 그는 리옹대에 세계 최초의 법과학감정소를 세웠고 여러 나라가 이를 모델로 삼은 법과학실험실을 잇따라 설립했다.

1955년 3월 내무부 산하에 만든 우리나라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이 중 하나다.

국과수는 2010년 8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승격됐고 중·동·서·남부 등 4개 분원과 함께 각종 사건에 대한 법적 감정과 사체부검 업무를 맡고 있다.

경찰의 경우엔 1964년 전국 지방경찰청에 첫 감식반이 생긴 이후 1999년 과학수사 시스템이 크게 발전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한편 인천경찰은 2009년 8월 아파트와 주택·상가 침입절도에 사용한 범죄 공구를 분석해 범인을 잡아내는 '침입범죄 공구흔적 검색시스템'을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해 국내 과학수사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황신섭기자 hs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