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트 보네거트

지난주에 이어 미국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장편소설을 소개한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바로 반전 소설 <제5도살장>(도서출판 아이필드)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1922년 태어나 2007년 84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그 유명한 벌지전투에 참전하게 되는데 총 한번 제대로 쏴보지 못한 채 '찌질'하게도 전쟁터에서 낙오되고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
그는 독일 드레스덴 포로수용소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을 경험하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된다.

드레스덴 폭격에 대해 잠시 설명하겠다. <제5도살장>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드레스덴 폭격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드레스덴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커트 보네거트는 연합군의 무시무시한 드레스덴 폭격 당시 지하 방공호에 숨어 있는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진다. 그런데 이 폭격은 도시 전체를 파괴해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연합국의 영국 공군과 미국 육군 항공대가 1945년 2월13일부터 15일까지 드레스덴을 폭격했는데 65만여 개의 소이탄과 3천900t의 고폭발성 폭탄, 방화 폭탄들을 드레스덴에 퍼부어 1천500도가 넘는 화재 폭풍이 발생해 전체 도시의 90%가 파괴되었다. 공식적으로 주민 3만5천 명이 불에 타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최대 13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드레스덴은 바로크 문화가 깃든 문화도시였다.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산업지대도 군사요충지도 아니었다. 따라서 이곳에 대한 폭격은 민간인 학살이나 다름이 없었다. 폭격을 결정한 영국 공군과 미국 육군 항공대 장군들께서는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이 정도면 슈퍼울트라급 살인 마니아라고 할 수 있겠다.

자, 이제 소설로 돌아가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주인공 빌리는 검안사로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유럽의 전장에서부터 현재와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딸의 결혼식 날 트랄파마도라는 행성의 외계인들에게 납치되어 그들로부터 새로운 세계관을 배우게 된다는 내용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2차 대전 당시 행해졌던 포로들의 끔찍한 대량 살육에 대한 한 낙오병의 목격담을 메타픽션과 공상과학과 패러디라는 블랙 유머의 기법을 빌어 풀어내고 있다. 끔찍한 전쟁의 상처를 유쾌하게 그려지는데 그 이면에는 강렬한 반전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하는데 무려 2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작가 자신이 경험했던 끔찍한 살육과 전쟁을 사실주의 기법으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커트 보네거트는 전통적인 소설기법을 버리고 은유와 공상과학, 패러디, 블랙유머의 기법을 동원해 우회적으로 전쟁의 참혹성을 고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나는 내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 학살에 가담해서는 안 되고, 적이 대량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고 늘 가르친다. 또한 대량 학살 무기를 만드는 회사의 일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런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표하라고 늘 가르친다"며 전쟁에 대한 반대 메시지를 던진다.

독자들도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학살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표하라"는 대목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몇몇 분들은 아직도 전쟁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제대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군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한판 붙자고 외친다. 그것도 동족끼리 말이다. 이런 분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들과 평화의 가치를 모르는 분들은 반드시 이 소설을 읽어보시길 부탁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빌리는 이렇게 외친다.

"나는 태초 이래 무의미한 살육에 열중해온 행성에서 왔습니다. 나는 살육한 인간들의 지방으로 만든 촛불로 밤을 밝혔습니다. 지구인들은 우주의 골칫거리가 분명합니다. 다른 행성들이 지금은 무사하더라도 곧 지구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러니 내게 비결을 좀 가르쳐주세요. 내가 지구로 가져가서 모두를 구원할 수 있게요. 어떻게 한 행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까?"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