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인
   
 


<서양 여성들, 근대를 달리다>(최재인·푸른역사)는 서양에서 근대적 질서가 등장했던 시대에 유난히 치열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을 통해 근대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책이다.

이 책은 해방의 이상과 배제의 논리를 동시에 품었던 근대가 여성에게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서구 근대사를 정리해 보면 역시 그것은 남성의 역사인데, 남성만이 근대사의 주체였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이 책에서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시대도 다양하고 지역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여러 대륙에 걸친 여성을 다루고 있다. 출신도 상류층에서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여성이라고 해도 시대와 사회, 계급이나 신분에 따라 그 경험의 차이는 상당히 크기 마련이다. 이 책은 '여성 개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그들 사이의 연대의 끈을 만들었다.

이 책은 각 나라와 시대에서 근대의 역설을 보여 줄 수 있는 여성을 선정했다. 이들은 근대적 변화가 시작된 시기 그 흐름에 휘말렸거나, 혹은 기꺼이 그 물살을 타면서 극적인 삶을 살았다. 기존의 이들에 대한 전기는 역경과 고난을 헤쳐 나간 예외적인 여성의 위인전이나 수난사가 되기 쉽고 또 이제까지 주로 그렇게 소개되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한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소개하는 전기적 서술에 집중하기보다는, 한 여성의 삶을 통해 그가 살던 시대의 본질을 묻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성들의 삶은 보편적 권리를 주창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권리를 특정 범주로 제한하는 근대의 이중성을 보여 주는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여성의 삶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서양 근대사를 재조명하려 노력했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성들과 같이 예외적인 이력과 지극히 특권적인 지위를 누린 것으로 보이는 이 유명인들의 삶은 들여다 볼수록 근대에서 여성이 가졌던 불안한 지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근대화의 추세와 근대 사회의 규범에 누구보다 충실하고자 한 이들이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배제되었고, 그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괴물 취급을 받기 다반사였고, 정말 미치광이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여성을 역사의 일방적 피해자로 여기고 여성사를 여성수난사로 환원하려는 것이나, 또 반대로 특출한 여성 영웅들의 성공담을 남성 중심의 역사의 대안으로 제시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역사 속의 피지배자, 약자 집단의 일부로서 여성이 견뎌 낸 고통과 동시에 그것을 감수하면서 이루어 낸 성취를 조명했다. 이와 함께 근대 여성의 복합적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폈다. 이러한 고찰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독려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고용 차별, 저임금, 육아, 가족 등의 무게가 여전히 여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젠더 지형을 좀 더 깊이 있게 분석하는 계기가 된다. 368쪽, 1만6천500원.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