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지난 며칠 동안 날밤을 세워 소설가 김주영의 장편소설 <아라리 난장>(문이당)을 읽었다. 세권짜리 소설로 결코 만만찮은 분량인데 책을 손에 잡는 순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재미에 푹 빠졌다.

이 소설은 IMF(외환위기) 시기를 배경으로 실직한 주인공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 의기투합해 장돌뱅이로 전국의 장터를 돌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주 무대는 장터이니만큼 장터에 모이는 인간군상은 모두 어렵게 살아가는 민초들이다. 시골장터, 지방 중소도시의 장터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지만 아득바득 살아가는 서민들의 끈질긴 삶의 희로애락을 소설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아라리 난장>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전에 이 소설과 관련이 있음직한 얘기를 잠시 꺼내놓자.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란 옛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삶과 밀접한 장소다. 단순히 물건을 매매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수히 오가고 부딪히는 우리네 삶의 축소판이 바로 시장이다.

가까운 이웃 혹은 먼 친척의 소식까지 시장에 가면 접할 수 있었고 세상 소식을 풍문으로나마 귀동냥할 수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는 물건흥정에서 사람 냄새가 물큰하게 풍겨오는 활기찬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시장은 삶의 활기가 없다. 이유인즉슨 도시 곳곳에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마트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웬만한 중소도시에도 대형마트가 터줏대감인양 치고들어온다.

대형마트 1개가 들어서면 동네 상점 130여 개가 폐업을 하게 되고 무려 550여 명이 실직하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대형마트의 체인점이랄 수 있는 기업형 슈퍼마켓(SSM)도 동네 골목을 파고들어 지역 상권을 아예 쑥대밭을 만든다. 이 기업형 슈퍼 하나가 들어서면 반경 1㎞ 이내에는 구멍가게를 비롯해 채소가게, 정육점 등이 망하게 된다.

본 기자가 대형마트의 폐해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소설 <아라리 난장>의 주인공들이 실직과 부평초 같은 삶 속에서도 그나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악착같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시장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얻었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소설의 주인공 창범은 IMF로 실직을 하게 되고 이혼을 당해 가정마저 파산이 난다. 자살을 결심한 창범은 무작정 강원도 동해안으로 떠나게 되는데 비슷한 처지랄 수 있는 봉환, 승희, 변씨, 태호를 만나 의기투합, 장돌뱅이(난전꾼)로 동업을 하게 된다. 이들은 명태, 오징어, 산나물 등 각 지역 특산물을 떼다가 전국의 장터를 돌면서 물건을 판다.

소설에는 장꾼들의 고단한 삶이 오롯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이들의 사랑과 시기, 질투, 갈등이 드러나기도 한다. 서민들의 애달픈 삶을 부각시킴으로써 제잇속을 차리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사실 <아라리 난장>의 주인공들은 소설 속 인물이지만 실제 우리네 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소설 속 인물들과 이야기들은 결코 허구가 아니란 얘기다. 즉 소설 속에서 동네 장터를 떠돌며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의 얘기는 백퍼센트 우리들, 우리네 이웃들의 얘기란 말씀이다.

그런데 대형마트와 독점유통자본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우리 이웃들의 삶의 터전과 삶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씀이다.

때문에 본 기자는 <아라리 난장>을 읽으면서 이 책이 전혀 소설 같지 느껴지지 않았으며, 질펀하게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이 숱하게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 한편이 찌릿했다. <아라리 난장>의 이야기가 이젠 현실이 아닌 과거의 아득함으로 묻어났던 것이다.

본 기자, 생활신조 중에 하나가 대형마트에 가지 않겠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다. 우연히 친구 따라서 대형마트에 한번 따라 갔을 뿐이다. 대형마트라는 괴물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마는 독점유통자본의 횡포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인 우리네 서민들의 아픔마저도 잊을 수 있겠는가?

이 책 꼭 읽어보시고, 조선말엽 보부상들의 삶의 애환을 담고 있는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도 읽어보시길.

그리고 대형마트 말고 재래시장에서 이웃들의 삶을 느껴보시길 … .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