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수 

날씨가 추워졌다. 올해에도 단풍 구경 한번 못가고 가을을 훌쩍 떠나보내는 거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번 주 '책과 사람'에서는 시 '오감도'의 시인 이상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소개하려고 한다. 소설가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문학동네)이란 소설이다.

이상?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혹시 이상을 모르는 독자가 계실지 몰라 하는 얘긴데, '고딩' 국어 시간에 단편소설 '날개'를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바로 '날개'를 쓴 작가이자 시인이다.

본 기자는 '초딩' 시절에 이상의 '날개'를 읽었다. 우리 집 다락방에서 말이다. 본 기자 일찍이 조숙해서 어린 시절에 다락방에 틀어박혀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곤 했다. 다락방에는 부친께서 모아놓은 엄청난 책더미가 쌓여있었다. 그곳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아라비안나이트> 성인판을 읽었고, 김동인 전집과 이효석 전집도 읽었다. <아라비안나이트>는 동화로만 알려졌는데 사실 엄청난 로맨스와 음담이 난무하는 성인소설이다. 이효석 선생의 글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까 본 기자,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주제에 다락방에서 인간의 성애를 다룬 소설들을 읽었다는 얘긴데 어느 날 이상의 '날개'가 수록된 한국문학소설선집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다락방에 드러누워 '날개'를 읽고 난 느낌은 일제식민시절의 암울함과 음침한 성적인 분위기가 뒤섞인 야릇함이었다. 아마 그 당시 본 기자는 사춘기로 접어들고 있었나보다. 그 소설을 읽어 본 독자들은 본 기자가 뭔 소리를 하는지 알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꾿빠이, 이상>에서 이상을 천재 시인이자 작가로 그리고 있다. 소설의 구조는 크게 3부작으로 이뤄져 있다. 천재 시인 이상의 데드마스크의 진위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이상의 맹목적 추종자의 어처구니없는 일생, 이상의 '오감도 16편' 원고의 진위 여부를 가리다가 몰락한 이상 연구자를 각각 다루고 있다. 각 편마다 독립된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장편소설이니만큼 이야기는 서로 연결돼 있고 중첩돼 있다. 뭐,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한마디로 소설적 구성이 돋보이고 흥미롭다는 얘기다.

하지만 본 기자, 김연수의 이 소설에 조금 뜨악한 점이 있다. 본 기자는 우선 이상을 천재 시인으로 생각지 않는다. 뭐, 본 기자보다는 수십 배 잘났겠지만 말이다. 사실 모출판사에서 주관하는 '이상문학상'이라는 게 있는데 해마다 수상자와 후보자를 선정하고 이들의 작품을 묶어 '이상문학상 수상집'이란 단행본으로 낸다. 이상의 이름값인지 혹자들은 이상문학상이 무슨 대단한 문학상인줄 착각하기도 한다. 수상집도 엄청 팔린다. 사돈이 땅 사면 배 아프다고 본 기자, 많이 팔리는 책이나 작가들을 보면 일단 배알이 꼴린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간다. 작가 김연수는 <꾿빠이, 이상>을 통해서 '문학행위' 자체를 논한다. 이상에 대한 과대평가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천재로 추앙하고자함이 절대 아니란 소리다. 김연수는 문학이 삶을 걸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 소설을 통해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걸고 전력투구하는 '문학행위'가 실상은 소설 속 이상 추종자이자 광신도인 등장인물 서혁민이라는 사람처럼 병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무모하기 짝이 없을 수도 있으며, 모방과 추종에 불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작가 김연수는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 "불멸의 문학이란, 위대한 작가란 삶을 판돈으로 걸 만큼 무한한 것일까? 그 끝없음을 믿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일까? 논리와 열정과 진위가 문제가 아니라면, 영원한 문학작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삶을 판돈으로 내걸 수 있는 의지의 문제일까. 아니면 제멋대로 굴러가는 운명이라는 주사위의 문제일까?"라고 묻고 있다.

이상에 대한 과대평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과잉해석들을 빼면 여하튼 재밌는 소설이다.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