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안전국에서 내려온 전보통신문을 들고 김문달 중좌 방으로 들어가서 보고를 해야 하는데 곽병룡 상좌가 직위 해제된 원인을 가늠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참 답답했다. 김문달 중좌가 전보통신문을 받아들고 안전부장이 직위 해제된 원인이 무어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변을 해줘야 하는데 대책이 서지 않는 것이다.

 기거 참, 기요과장이 기런 것도 알아보지 않고 뭐 하는 겁네까, 하고 힐책하면 할 말도 없는데 이걸 어카지…?

 기요과장은 한동안 고민에 찬 얼굴로 낑낑거리다 도 안전국 대열과장(인사과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대열과장은 마침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요과장은 자신의 입장을 토로하듯 전화통을 붙잡고 곽병룡 상좌가 직위 해제된 원인을 물었다.

 『과장 동지! 밑도 끝도 없이 이거이 어케 된 것입네까? 우리 낙원군 안전부장 동지는 전보통신문만 한 장 달랑 내려보내면 밑에 사람들은 보고하러 들어가 무슨 말을 합네까? 직위 해제된 원인이 뭡네까?』

 『나도 기거이 풀리지 않아 사실 마음이 찝찝했는데 말이야….』

 도 안전국 대열과장은 방금 신의주 국가안전보위부로부터 비공식적으로 소식을 들었다면서 그때서야 배경을 알려 주었다.

 『곽병룡 상좌의 맏아들이 전방에서 식량을 수령해 오다 화물 자동차를 엎어먹고 그 후과가 두려워 조국을 배신하고 남조선을 달아났다는 보고가 들어왔소….』

 『허, 기거 참! 안전부장 동지 맏아들한테 어케 기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지요….』

 『길쎄 말이야. 곽상좌 앞날이 걱정돼.』

 도 안전국 대열과장은 남의 일이 아니라면서 가슴아파했다. 말을 듣고 보니 그도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 같이 느껴져 고개를 끄덕여대다 기요과장은 전화를 끊었다.

 이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빨리 기밀문건을 보고하면서 앞으로 부부장 동지를 안전부장으로 모시며 충성을 다하겠다고 매달리는 것이 기요과장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과거에 많은 도움을 받고 은혜도 입었지만 이제 곽병룡 상좌는 더 이상 쳐다볼 가치가 없는 인물이 되고 만 것이다. 남들보다 한 발 먼저 곽병룡 상좌한테서 떨어져 나와 새롭게 안전부장 자리에 올라앉는 김문달 중좌한테 접근해 소리 소문 없이 심복노릇을 하겠다고 심중의 깊은 마음을 전해야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시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기요과장 자리는 호신(護身)의 자리도 되었고 권세의 자리도 되었다. 남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기밀문건을 직위를 이용해 부부장들보다 먼저 보면서 자신한테 유리한 쪽으로 처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한테는 자신이 먼저 본 정보를 하나씩 둘씩 떨어뜨려 주면서 생활에 실익을 안겨주면 그로부터 수혜를 입은 사람들은 뒷날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다. 꼭 보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