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릭 게코스키

이번 주에는 책을 소개하는 책을 소개하겠다. 책을 소개하는 책이라 … . 쉽게 말하자면 본 기자가 신문 지면에 쓰고 있는 독서평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세계적인 희귀본 서적상이자 장서가인 릭 게코스키(Rick Gekoski)의 <게코스키의 독서 편력>이란 책이다.

미리 결론을 내리자면 이 책은 꽤 쓸 만하다. 거지반 1년은 머리 터지게 읽어야할 양서들을 책 한권으로 끝낼 수 있기 때문에 초고속 지식습득을 원하는 분들께 아주 유용하다는 얘기다. 본 기자가 어쭙잖게 연재하고 있는 '책과 사람' 칼럼보다 지식과 교양, 재미 면에서 백만 배 낫다고 보면 된다.

먼저 저자 게코스키에 대해 짧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게코스키, 이 사람 이름이 참 우습다. 멍멍이 코, 즉 개코를 연상케 한다. 우연찮게도 이 책의 원제는 <개 밖으로(Out of Dog)>다. 참, 이제 농담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책 소개에 들어간다.

저자 게코스키는 미국에서 태어나 옥스포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참, 학벌 좋다. 그는 희귀 초판본 거래업을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이색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영국의 워릭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하던 그는 초판본 수집에서 황금의 세상을 발견하고 '좁은 방에 갇혀 사는 꽁생원 같은' 교수의 길 대신 '책을 사 모으는 열정으로 가득 찬 유쾌한 세상'으로 뛰쳐나왔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교수직을 내던지고 책장사로 나선 것이다. 그런데 책장사라고 해서 무시하지 마라. 이 분 문학 평론가로서도 깍듯이 대접 받는다고 한다. 2005년 부커상 심사위원에 선정되기도 한만큼 지식과 교양이 철철 넘치는 분이다.

<게코스키의 독서 편력>은 유명 희귀본들에 얽힌 뒷이야기를 소개한 저자의 전작 <톨킨의 가운>과 달리, 삶의 각 단계에서 저자 자신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사적인 도서 목록을 소개한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T. S. 엘리엇의 <황무지>처럼 자타 공인 고전도 있지만, <알을 품는 호튼> 같은 동화책과 <양들의 침묵> 같은 탐정소설, 의학서까지 게코스키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한 책들을 키워드로 삶 전체를 회고한다. 즉 단순히 책만 소개하는 독서평이 아닌 인생을 성찰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통해 웃음과 눈물을 번갈아 짓게 하는 내용으로 꽉 차 있다.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자면 게코스키 선생, 멍멍이 탕을 잡쉈는지 황혼기에 부인과 이혼을 한다. 이혼에 따른 재산분배 합의를 하게 되는데 저택을 부인에게 위자료로 주고 본인은 60년간 모았던 자신의 책 수천 권을 가져가기로 한다. 큰 집을 부인에게 주고 조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게코스키는 책을 둘 곳이 없어 나중에 큰 집을 마련하면 그때 자신의 책을 가져가겠다고 부인에게 말하고 약속까지 받는다.

그런데 아뿔싸, 1년 뒤 큰 집을 마련한 그가 전처에게 자신의 책을 돌려달라고 하자 그녀는 책을 돌려주지 않는다. 자신의 피와 살 같은 책을 순식간에 빼앗겼으니 그 상실감이란 어떠했는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게코스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어쨌든 남편에게 배신을 당한 부인 입장에선 정말 통쾌한 복수였다.
어쨌든 본 기자, 책을 잃은 게코스키에게 동병상련을 느낀다. 본 기자도 책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다. '중딩'시절 명문(?) 대건중 도서부 부회장(아깝다 회장이 못돼서) 출신 아니랄까봐 책분류도 철저하다. 책수집광이자 독서광인 본 기자, 당연히 누군가 책을 빌려달라면 절대 책을 빌려주지도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예쁜 여자가 책 빌려 달라면 기꺼이 빌려준다. 간이라도 빼달라면 빼 줄 수 있을 텐데 그깟 책 몇 권이 대수인가.

그런데 본 기자의 책 삼분의 일은 멀리 바다 건너가 있다. 그리고 삼분의 일은 고물상으로 넘어갔다. 본 기자, 어머니 집에 얹혀산다. 얹혀사는 주제에 어마어마한 책더미를 들여놓기가 민망해 어머니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 엑기스만 추려 나머지는 고물상에 넘겼던 것이다. 또 열댓 상자 분량의 책들은 회사 6층 복도에 쌓여있다. 언제쯤 집을 장만해 책들을 들여놓을 수 있을런지 … .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