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인천 남동갑)이 15대 총선때와 마찬가지로 인천지역 최고의 득표율(54.9%)을 얻으며 재선고지에 안착했다. 그가 연거푸 가장 높은 득표율을 획득한 비결은 무엇일까. 굉장한 그만의 비책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쉽게 빗나갔다.

 그가 밝힌 비결은 다름아닌 「겸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5대 총선에서 겸손을 배우고 이번 총선에선 겸손을 확인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그가 잘 나가던 앵커에서 정치인으로 변신을 했을 때만 해도 「고개가 빳빳하다」 「아직도 앵커인 줄 아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겸손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고개숙여 인사하는 게 굉장히 어색했지만 이젠 1년에 양복 상의 단추를 3번 이상 바꿔달아야 할 만큼 자연스러워졌다』고 했다.

 이 의원은 『가능한한 지역 행사와 모임, 경·조사에 참석해 주민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 온 것이 당선의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고 진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이윤성」하면 국회의원보다는 앵커를 먼저 떠올릴 정도로 그는 유명 앵커 출신이다. 그런 그가 유명 앵커가 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KBS 고위층이 날카로운 인상과 직선적인 그의 성격 등을 이유로 들어 번번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는 KBS 보도국 부장단 투표를 거쳐 앵커로 선발돼 방송 사상 초유의 경선을 통한 앵커가 된다. 게다가 회사 고위층이 우려했던 그의 강렬한 인상은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먹혀들어 경쟁 방송사 시청률을 앞지르는 쾌거도 이뤄냈다.

 「앵커의 꽃」인 9시 뉴스 앵커를 3년동안 맡으며 모처럼 안정된 생활을 하던 그는 정치권으로부터 뜻하지 않던 제의를 받게 된다. 15대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96년 초, 김덕룡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으로부터 출마를 권유받은 것이다.

 그는 『기자로서 보도본부장을 해보는 것이 소망인데다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어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제2의 인생을 위해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에 결심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15대 국회 의정 활동 기간중 유권자 운동연합이 선정한 최우수 국회의원 10걸에 선정되고 국정감사 베스트 5인에 뽑히는 등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4년간 내리 행정자치위에 몸담아 한나라당 주공격수로 맹활약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번 총선의 슬로건을 「인천의 힘」으로 내걸었다. 15대 때의 「뛰는 남자, 앞선 정치」가 참신성을 강조했다면 이는 인천의 중심으로 우뚝 서겠다는 강한 의지 표출이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철새 정치인이 난무하는 인천의 정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인천의 경제, 불모지로 전락하고 있는 인천의 문화를 다잡아 새천년, 신인천시대를 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그는 한나라당 당선자들과의 팀워크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한 것은 개인보다는 팀워크를 발휘, 인천을 발전시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인천의 힘으로 우뚝서겠다는 말은 차기 인천시장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재선은 공부하는 시기』라고만 답할 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아 묘한 여운을 남겼다. 〈최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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