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혜 정치부 기자


 

   
 

박우섭 남구청장은 왜 숭의운동장 홈플러스를 '불허'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내용은 엄연히 '입점불가'였는데도 말이다. 그의 답은 조건부 허가였다. 흰색이나 검은색이 아닌 회색이다. 허가와 불허, 둘 중 어느것을 선택해도 뒤따를 엄청난 후폭풍을 예견한 그의 실속있는 판단이었으리라.

홈플러스를 순순히 받아들이면 상인들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고 거부하면 인천시의 무시못할 태클이 들어올 것이다. 대형마트의 입점을 승인하는 최종권한이 기초단체장에게 있어 박 구청장의 부담은 대단했을 것이다.

이를 피해보려고 상인과 홈플러스측으로 이뤄진 유통상생발전협의회에게 결정을 맡겼지만 워낙 첨예한 문제라 합의에 실패했다. 어느 쪽을 택하던 자기에게 날아 올 화살이 있어 두려웠겠지만 박 구청장은 이 화살을 한 대도 맞을 생각이 없었던 것같다. 표면적으로 입점을 허가하지만 홈플러스가 절대 지키지 못할 조건을 내걸며 두 쪽 모두에게 명분을 마련했다.

26일 기자회견을 연 박 구청장은 이 결정을 발표하면서 "중요한 것은 '등록허가'라는 결론이다"라며 허가를 내줬다는 걸 거듭 강조했다. 등록허가를 말하면서도 사실상 허가가 아닌 속내를 들킬까 염려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꼼수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얄팍했으니 박 구청장의 염려가 지나쳤던 듯 싶다.

상인들은 곧장 박 구청장이 자신들과 협의되지 않은 조건으로 등록을 허가했다며 반발하면서도 내용적으로 입점불가를 결정해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인천시는 남구가 시에게 정면으로 도전했을 뿐 아니라 막대한 손해를 내게 하는 쪽으로 결정했다며 앞으로의 '불이익'을 예고하는 분위기다.

박 구청장은 차라리 불허라는 명확한 한 쪽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당당히 감수하는 편이 나을 뻔 했다. 중요한 건 박 구청장이 당선 전부터 내세운 '숭의운동장 대형마트 입점시키지 않겠다'는 공약이다.

"내가 구청장이 되면 숭의운동장에 대형마트 못 들어 옵니다"라고 남구주민들에게 천명한 이상, 처음부터 이 문제를 고민하거나 유통상생발전협의회를 열어 정치적 부담을 피해가려는 시도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었다. 표를 담보로 유권자에게 내건 약속을 그대로 지키는 건 너무도 당연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