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판례로 상호작용 보여주며 통념 비판


 

   
 

법원은 과학적으로 가시적인 위험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유전자변형·재조합 식품의 생산과 유통을 허용할 수 있을까? 특정한 과학적 견해가 '주류 과학'계의 기존 합의에 반한다는 이유로, 법원은 그러한 견해의 증거 능력을 부정할 수 있을까? 의학적 소견과는 관계 없이 환자 본인이나 그의 가족이 죽음, 또는 죽임을 원하는 상황에 대해서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생물학적으로 죽거나 남남이 된 부부의 냉동배아는 누구의 소유일까?
쉴라 재서너프의 <법정에 선 과학>(동아시아)은 위와 같은 질문들과 맞닿은 풍부한 판례들을 통해 오늘날 과학적 진리와 사법적 정의가 구성되는 사회정치적·문화적 맥락들을 이해하는 데 불가결한 인식론적·지적 전환점들은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과학과 법이 체계적으로 불화하며 심지어 양립불가능하다고까지 하는 통상적인 진단·평가를 넘어서서, 그는 사회에 깃든 채로 운용되는 이들 두 제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일정 정도 서로를 구성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법과 과학을 둘러싼 기존 담론 지형에 대해 이 책이 던지는 도전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법과 과학을 그 자체로 독립된 실체로 가정·간주하는 실재론적 접근 방식이다. 이 접근법에 따르면, 사법적 판단이나 과학적 진리 탐구 과정, 나아가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서 불거지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은 법과 과학이란 영역에 부여된 '전문성'과 '자율성'을 유지·강화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쉴라 재서너프에 따르면 이같은 접근법이 각 영역을 '전문가주의'의 덫에 빠뜨리는 단순하고 안이한 해법이다. 그에게 사법적 판단 과정은 '좋은 과학 대 나쁜 과학' 또는 '정의 대 불의'를 미리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고, 과학적 사실을 그저 추인·입증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재서너프의 관점에서 봤을 때 기존의 법리적·과학적 사실들은 늘 서로 맞물린 채 사회적·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허물어지며, 다시 만들어지는 상호되먹임 과정의 산물이다. 따라서 관료화되고 현실과 동떨어지기 쉬운 '형식적 균형'에 매달려서는, 법과 과학이 실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 양극화되고 불평등한 갈등을 전제한 가운데 신뢰할 만한 지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주목하는 일이야말로 법과 과학, 나아가 이 두 제도를 둘러싼 사회정치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유용하고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재서너프가 던지는 지적으로 또다른 중요한 도전은 '법 지체'의 관점에서 법이 늘 과학 발전과 변화의 꽁무니만 좇는 양 간주해온 통념이나 관련 이론들에 대한 비판이다.
재서너프의 판례 연구에 따르면 통념과는 달리, 사법제도와 이에 기초한 법리적 판단은 과학적 성취를 따라잡는 굼뜨고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사법적 절차는 특정한 과학 담론과 관련 기술이 특정한 방식으로 발전할 조건을 사전에 만들고, 뒷받침해왔다는 것이다. 여러 판례들을 통해 재서너프는 사법적 판단과 절차가 어떻게 과학적 진전을 이루는 사회 영역의 변화·재편 과정을 틀지워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익숙한 통념들과는 다르게 작동하는 법과 과학의 끊임없는 상호되먹임 과정이 그 유효성을 온전히 발휘할 방법으로, 저자는 이들 제도가 곧잘 강화·옹호하는 전문성의 권위를 상대화·탈구축할 수 있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미덕이 소송 절차 속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지 탐색하고 있다. 법정은 권력을 부리고 행사하는 여러 행위자들의 전문성·전문기술을 각종 행정 규제나 법의학, 기업책임이라는 맥락에서 의문에 부칠 수 있는, 다시 말해 민주주의 가치를 높이는 대 적합한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정에 선 과학>은 법과 과학에 대한 해롭고 낡은 통념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이 어떤 것인지 한껏 맛보게 해준다. 396쪽, 1만5천원. /조혁신기자 chohs@itimes.co.kr